며칠전 페루 헬리콥터 추락사건으로 숨진 이가 지난 1999년 교통사고로 작고한 농구선수 고 김현준 씨의 동생임이 알려졌습니다. 돌아가신 분에 대한 애도를 표합니다.

동생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지만  김현준 선수에 대해서는 아련하면서도 그리운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그당시 '컴퓨터 슛터', '전자 슈터'라는 닉네임을 얻으며 준수한 외모(침착하면서도 반듯한)로 많은 인기를 받았습니다.

 

 

 

 

 

 

그는  광신상고와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뒤 1983년 실업 농구 삼성전자 팀에 입단하여 줄곧 포워드를 맡으며
현대전자의 이충희와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슈터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87년부터 2년 연속 최우수선수, 89년부터 4년 연속 득점왕에 오르는 등 지금의 농구선수들이 쉽게 이루기 힘든기록들을 남겼습니다.

 

 

그러한 기록들 보다 그가 그리운 이유는...
아마도 그가 한창 열정적으로 경기를 뛸때의 (선수들 말고 나의) 젊은 시절의 애틋한 기억들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때의 친구들, 사랑들, 그리고 지금은 소소해 보이고 우습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심각했던 고민들이 생각납니다.

 


김현준 선수가 생존했다면 올해 52세입니다.이충희 선수가 한살 많습니다.
두선수가 그당시 삼성과 현대의 이름을 걸고 뛸 정도로 대단한 활동을 했습니다.
성실하고 꾸준한 플레이로 칭찬을 받았던 두사람이었지만 맞붙으면 현대가 이기는 경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김현준 선수의 안정된 득점력으로 항상 치열한 경기가 전개되곤 했습니다.

 

 

어쩌면 김현준 선수는 기아 소속이었던 김유택 선수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아니, 김유택 선수가 김현준 선수를 닮았다고 해야 하겠죠.
포지션도 다르고 키도 차이나 나지만 백보드를 맞추어서 득점하는 안정된 플레이가 그런 생각을 하게 합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않았고 항상 2인자로 비춰지곤 했지만 팀에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선수였습니다.
묵묵하게 본인의 역할을 해내고 비록 팀이 지더라도 그에 대한 평가는 퇴색되지 않았습니다.

 

 

 

당시엔 그저 현대전자에 주득점원이었고 이충희 선수나 허재선수의 유명세가 가려져 있던 선수로 알고 있었는데
39살의 아까운 나이에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뉴스를 꽤 오래전에 접했습니다.

오늘 다시 그의 동생의 사고사를 접하며 20년이 넘은 그 당시의 기억들을 더듬어 봅니다.

 

 

 


다시한번 돌아가신 분에 대해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posted by max7s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