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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찬란한 고독과 향기로운 습관에 대하여: ‘혼술’과 ‘반주’를 위한 찬가

 
어떤 이들은 말한다. 술은 여럿이 마셔야 제맛이라고. 웃고 떠드는 분위기 속에서 잔을 주고받아야 취기가 배가된다고. 근데, 세상이 그렇게 한가한가? 굳이 같이 술마실 사람을 찾느니 홀로 따르는 한 잔의 묵직함이 더 값질 수 있다. '혼술'과 '반주', 이 두 단어는 단지 식습관이나 음주 행태를 넘어서, 비린내 나고 거북한 일이 반복되는 한국에서 버티는 중년들의 존재 방식과 자존의 표현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고독을 견디는 힘과 일상을 음미하는 미학이 깃들어 있다.
 
(주의 : 술 안마시는, 못마시는 중년들을 패스하셔라.)

개념을 챙기자

 
먼저 개념 정리를 해보자. '혼술'은 말 그대로 혼자 마시는 술이다. 주로 집에서 혹은 조용한 술집에서 스스로 술을 따르고 마시는 행위를 뜻한다. 반면 '반주'는 음식을 먹으며 곁들이는 술을 말한다. 반드시 혼자 마시는 것은 아니지만, 주가 아닌 ‘식사’의 보조 역할로 술이 존재하는 점이 특징이다.
 
2023년 보건복지부의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20대부터 60대까지의 성인 남녀 중 43.2%가 한 달에 한 번 이상 ‘혼술’을 경험했으며, 그 중 31.7%는 주 2회 이상 혼술을 한다고 응답했다. 반주는 더 일상적이다. 성인 남성의 57.8%, 여성의 44.1%가 ‘식사 시 술을 곁들인다’고 답했다. 주류 회사들의 마케팅 전략 역시 이를 반영하듯, 저도수의 주류나 1인용 소용량 술을 지속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고백: 혼술과 반주의 그림자

 
물론, 이런 술 문화에 무조건적 낭만을 부여하는 건 얄팍한 미화일 수 있다. 혼술은 자칫 사회적 고립의 증상이 되기도 한다. 인간관계의 번잡함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불가피한 고독의 해소책이라면 그 자체로 슬픈 풍경이다. 술잔을 부딪칠 상대조차 없는 삶의 쓸쓸함, 혼잣말로 건배를 외치는 공허한 저녁. ‘혼술’은 때때로 고립의 알리바이다.
 
반주 또한 마냥 멋진 습관은 아니다. 식사와 술의 경계가 무너지며, 일상의 경계도 흐려진다. 점심 반주가 저녁 음주로 이어지고, ‘한 잔쯤 괜찮겠지’라는 자기 합리화가 누적되면 결국 알코올 의존의 문턱을 넘게 된다. 게다가 반주는 유혹처럼 다가온다. 불판 위에서 구워지는 삼겹살, 찌개에 잠긴 두부, 그리고 곁에 놓인 소주 한 병. 그 유혹 앞에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가. 반주는 절제의 미덕과 절망의 방종 사이를 줄타기한다.

 

현대사회는 왜 ‘혼술’과 ‘반주’를 부추기는가

 
이제 본질적인 질문을 해보자.
왜 우리는 점점 더 ‘혼술’과 ‘반주’에 익숙해지는가? 왜 이런 행위가 자연스럽고, 심지어 권장되는 문화처럼 자리잡았는가?
그 이유는 냉정하고 씁쓸하다. 현대사회가 점점 더 인간을 분절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주의의 팽창,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피로, 경쟁과 생존의 압박은 사람들을 홀로 있게 만든다. 관계는 줄었고, 시간은 촉박해졌다. 그리고 그 빈틈을 술이 메운다.
 
게다가 미디어는 혼술과 반주를 라이프스타일로 포장한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퇴근 후 편의점 맥주를 마시며 인생을 반추하고, 유튜브에선 '혼술 브이로그'가 조회 수를 올린다. 술은 더 이상 음주의 대상이 아니라, 콘텐츠가 되었다. 고독은 상품화되고, 중독은 낭만화된다. 이것은 자본의 연극이며, 고독의 상업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찬양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혼술과 반주를 찬양한다. 중년의 삶이란 무엇인가? 무수한 관계의 끝자락에서 발견하는 고요함, 수많은 역할을 벗어난 후의 적막,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을 마주하는 용기다. 혼술은 그 순간을 견디는 방식이다. 나와 함께 술을 마시는 이가 나 자신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성숙한 태도인가.
 
반주는 또 어떠한가. 반주는 일상에 대한 예의이자, 하루를 축복하는 의식이다. 허겁지겁 음식을 밀어넣는 대신, 술 한 모금에 감칠맛을 더하고, 씹는 순간을 음미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시간. 중년의 삶은 종종 단순한 식사조차 귀찮고 무미건조하다. 그러나 반주는 그 식사에 향기를 부여한다. ‘오늘 하루도 고생했어’라는 말 대신, 찬 술잔이 말을 건다. 말없는 위로, 그것이 반주의 언어다.
 
혼술은 선택이고, 반주는 태도다. 그것은 도피가 아니라 자기 성찰의 시간이며, 중년에게 주어진 소소하지만 확실한 자존의 방식이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한 건배를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인생의 뒷맛을 음미할 수 있다.


혼자 마시는 술은 때로 쓸쓸하다. 그러나 그 쓸쓸함마저 삶의 일부로 품을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외로움이 아니다. 식사와 함께 곁들인 술 한 잔은 평범한 하루를 축제로 만든다. 자타가 인정하는 '중년'에 접어든 당신은 이제야 비로소, 혼술과 반주의 진짜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것은 중년이 인생을 마시는 방식이다.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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