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의대 공화국이 어쩌고 하는 글을 또 올리게 되었는데...의사들을 까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 나라 '수재'들이 의대에 몰빵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개탄하는 잡담이란 걸 강조한다. 연식이 된 중년이상이라면 알 것이다. 예전엔 지방의대의 입결은 서울대 공대를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였다. 머리 좋은, 창의적인 아이들이 좀 더 다양한 분야에 진출하는 시대가 다시 오길...
수능 만점=서울대 의대, 돈에 굴복한 병든 사회의 자화상
1. 핀란드의 만점자는 예술을 선택하고, 한국의 만점자는 돈을 선택한다
2021년 핀란드. 대학 입시 만점자 셋이 음악과 지리학을 선택했다. 그들이 “의대 말고도 인생은 많다”고 속삭이는 듯한 이 장면은, 한국이라는 병든 나라에서 보면 거의 판타지에 가깝다. 최근 5년간을 보면 한국에선 대다수의 수능 만점자가 서울대 의대에 줄지어 입학했다. 마치 그 외의 선택지는 실패나 낙오로 간주되는 것처럼 말이다.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 혹시 핀란드 의사들이 가난해서일까? 아니다. OECD 통계에 따르면 핀란드 의사의 연간 평균 소득은 약 12만 유로(약 1억 7천만 원)로 꽤 높다. 한국 의사의 평균 수입은? 병원 규모나 전문과목에 따라 다르지만, 개원의 평균 연 소득은 4억 이상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한국의 수능 만점자를 탓할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 자체가 돈에 굴복되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보는 편이 맞다.
2. 사교육, 돈으로 교육을 왜곡시키는 가장 위대한 기생충
한국에서 수능 만점이란 순수한 두뇌의 승리가 아니라, 대부분 ‘사교육의 총력전’의 결과다. 무슨 말이냐고? 강남 대치동의 고액 과외, 학원가의 족집게 모의고사, EBS를 뒤엎는 사설 커리큘럼. 이 모든 것에 연 1천만 원 이상을 쏟아붓는 가정도 흔하다. 이쯤 되면 ‘실력’이라는 단어는 ‘자본력이 만든 환상’이 된다.
사교육은 평등을 파괴한다. "모두에게 열려 있는 교육 기회"라는 공교육의 근본 가치는, 한국에선 이미 오래전에 생을 마감했다. 현재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경제력의 차이를 학력의 차이로 번역해주는 완벽한 자동 번역기다.
3. 재수, 삼수는 투자가 아니다. 무의미한 도박이다
매년 수능 끝나고 나면 재수학원에 줄을 선다. 그들의 머릿속엔 이런 생각이 있다. "나는 의대 갈 수 있었는데, 운이 나빴어. 이번엔 진짜야." 그렇게 1년, 2년, 심지어 3년. 그 긴 시간과 돈을 쏟아붓고 얻은 건 무엇인가? "너흰 못 갔지만, 난 결국 갔다"는 우월감과 "이 정도 투자했으면 얻어야지"라는 보상심리다.
그러나 현실은? 이렇게 늦게 들어간 의대생들 중 일부는, 정작 그 직업의 소명엔 관심이 없다. 그저 돈, 명예, 부모의 자랑감에 목숨을 걸었을 뿐이다. 환자의 생명보다 자신의 성적표가 더 소중했던 이들이, 결국 의료 현장에서 책임을 다할 수 있을까?
4. 교육 선진국 코스프레는 그만하자. 한국은 교육 망국이다
한때 ‘교육열’이 한국을 성장시켰다는 말, 이젠 웃음거리다. 지금의 교육은 성장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계급 재생산의 수단이다. 대입은 ‘운명이 정해지는 절대 평가’가 되었고, 수능은 ‘사회적 지위를 점수로 환산하는 국가공인 테스트’가 되었다.
심지어 학생의 행복은 안중에도 없다. OECD 조사에 따르면 한국 학생의 삶의 만족도는 거의 최하위권이다. 왜일까? 공부는 더 이상 ‘앎의 즐거움’이 아니라 ‘탈락에 대한 공포’를 줄이기 위한 생존 전략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나라가 교육 선진국이라 자부한다면, 거울부터 새로 사야 한다.
5. 수재들이 의대에만 몰리면 나라가 병든다
수능 만점자는 분명 재능 있는 이들이다. 그 재능이 다양한 분야로 흩어졌다면? 우린 지금쯤 더 좋은 법률가, 과학자, 시인, 기업가, 정치인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이들을 모두 의사로 만든다. 마치 국가는 그들에게 "다른 길은 실패"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건 교육 정책 실패다. 진로 다변화 정책? 진로 교육 강화? 다 공허한 구호일 뿐이다. 수능 구조 자체가 특정 과목에 편향되어 있고, 사회 구조는 의대를 벗어나면 ‘루저’로 낙인찍는 분위기다. 이걸 바꾸는 게 정책가의 일인데, 이들은 그저 기득권의 눈치를 보며 자리를 지킬 뿐이다.
6. 의대 특혜? 아니, 불이익이 필요하다
의사라는 직업이 고된 직업임은 맞다. 생명을 다루는 중압감, 의료 사고의 위험, 불규칙한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보상이 주어지고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의사가 귀하니까? 수요가 많으니까? 맞다. 하지만 공급 조절 실패는 국민 전체의 의료 접근성을 떨어뜨린다.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 지방대 의대 설립, 재정 지원. 이런 정책이 나올 때마다 반발하는 건 대부분 기득권이다. 그러나 교육이란 공공재다. 수능 만점자에게 의대 진학만이 유일한 선택지가 되지 않도록, 제도는 오히려 의대 진학을 불리하게 설계해야 한다. 높은 성적이 꼭 고소득 직종에만 연결되도록 설계된 지금의 시스템이야말로 진정한 ‘불공정’이다.
7. 결론: 이 나라에서 교육은 꿈이 아니라 족쇄다
핀란드의 만점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선택했다. 한국의 만점자는 당연히(!) 돈과 지위에 마취되어 끌려간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그들을 그렇게 만들게 내버려둔 건, (허구헌날 마취약만 뿌려대는) 이 나라의 미친 교육 시스템이며, 그 시스템을 만든 교육 관료들과 정책 결정자들이다.
이 나라는 더 이상 교육을 통해 꿈을 이루는 나라가 아니다. 오히려 교육을 통해 "너의 꿈은 틀렸다"고 말하는 나라다. 수능 만점이라는 찬란한 성적도, 이 사회에선 결국 ‘의사’라는 굴레를 쓰기 위한 티켓일 뿐이다. 그렇게 빛나던 수재들이, 모두 똑같은 흰 가운을 입고, 병원 복도에 서 있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은 그 광경을 보며 자랑스러워한다. 비극도 이쯤 되면 한 편의 코미디다.
“의대 공화국”의 자화상: 돈과 시간의 무덤 위에서 밥그릇 싸움
이 나라에서 ‘의사’는 직업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사회적 계급이며, 입시 피라미드의 정상에 군림하는 상징물이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주입되는 인생의 승패는 사실상 '의대 진학 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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