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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의대 공화국”의 자화상: 돈과 시간의 무덤 위에서 밥그릇 싸움

 
이 나라에서 ‘의사’는 직업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사회적 계급이며, 입시 피라미드의 정상에 군림하는 상징물이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주입되는 인생의 승패는 사실상 '의대 진학 여부'로 결정된다. 이건 더 이상 과장이 아니다. 우리는 단 한 번도 의사라는 직업을 직업으로서 다루지 못했다. 의사는 (그들에겐) 돈이고, (환자들에겐) 권력이고, (그들의 가족에겐) 안정이다. 그것은 절대 선이고, 그 외의 직업은 그냥 탈락이다. 이것이 현재 한국 사회가 만든 "의대 신화"의 실체다.


돈이 곧 윤리다: 의사의 경제적 신화 해체

의사의 고소득, 퇴직 없는 직업, 사회적 존경. 여기까지는 인터넷 검색 몇 번이면 나오는 상투적인 정보다. 하지만 이 명제들을 하나하나 해부해보자. 의사가 많이 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건 의료 시장의 폐쇄성과 진입 장벽이 만든 인위적 독점의 결과다. 일부는 국민 건강보험 재정의 손실과 전공의 착취 구조 위에서 이뤄지는 대형병원의 왜곡된 수익이라고 비판하겠지만 그것 마저도 무시하는  것이 의료자본주의다.

퇴직이 없긴 하다. 자신의 정신과 신체가 온전하다면 90세를 넘어서도 가능한것이 의사의 특권이다. 기술 발전과 인공지능의 등장은 진료 영역을 빠르게 대체할 거라고? 개뿔이다. 의사가 곧 ‘기계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노동자로 전락할 가능성은 없다. 사회적 존경? 글쎄다. 오랜 시간 의사가 누려온 권위는 더 이상 전문성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의대 입시’라는 가장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자라는 상징적인 훈장일 뿐이다.


상위 0.1%의 탈출구, 그 끝은 청진기

그 훈장을 쟁취하기 위해 대한민국은 오늘도 수많은 학생들이 ‘영혼없는 문제풀이 기계’로 전락하고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선별된 ‘최상위층’ 수재들이 고작 해야 하는 일이 기계적인 처방전 작성, 보험 수가 계산, 그리고 미디어에서 나오는 ‘의사 파업’의 익명 지지자로 남는 일이다. 무슨 고등한 사명 의식이나 인류애는 없다. 요는 이거다. "의사 = 돈 잘 버는 직업 = 내가 선택해야 할 길." 이 공식이 유지되는 한, 우리는 어떤 시대에도 ‘수재들의 굴복’을 피할 수 없다.


증원도 못하면서 미래를 논한다고?

이 와중에 정부의 정책은 기만적이다. 지난해 2000명 증원하겠다더니, 1년 만에 다시 원위치. 3058명.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고작 ‘의대 정원’ 하나 정하지 못하고 표 계산과 여론 눈치 보기에 바쁜 국가의 모습은, 대한민국이 의료의 미래에 어떤 전략적 안목도 없다는 것을 방증한다.

모집정원?오늘은 늘리고 내일은 줄인다. 장기적 비전 따윈 없고, 그때그때 생색만 내는 실속 없는 쇼다. 그러면서도 국민 앞에서는 “의료 공공성”을 운운하며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려 든다. 그런데 그 ‘공공성’은 대체 어디에 있나? 지방엔 의사가 없고, 중증 질환자는 대기 명단에 목숨을 걸고, 응급의료는 속빈 강정이다. 이쯤 되면 정원 조절은 커녕, 의료 시스템 전체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게 답 아닐까?


 

소진된 수재들, 국가의 오발진

그러나 무엇보다도 문제는, 이 사회의 ‘극상위’ 수재들이 의대에만 몰리는 현상이다. 단기적으로는 이들이 타 분야로의 진출을 포기하면서 기술, 인문, 예술, 사회과학의 혁신 동력이 말라붙는다.

인공지능? 로봇공학? 기후위기 대응? 다 필요 없다. 의사가 되면 되니까. 장기적으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사회는 기능적으로 슬금슬금 마비된다. 전공자 없는 정책, 전문가 없는 공공영역, 아이디어 없는 산업. 창의성은 고사되고, 남는 건 ‘정답 외우는 기술’뿐이다. 지식은 흐르지 않고, 정체된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병원에서 시작해 병원으로 끝나는 사회’로 수렴해간다.

그래서 최근에 이국종 교수 그랬다. "이놈의 나라는 입만 터는 문과놈들이 다 해 먹는다"고. 뛰어난 이과 수재들이 바닥 났으니 문과 권력자가 오발진하고 법돌이들이 급발진하는 나라가 2025년 한국의 실상이다.


유전되는 직업, 폐쇄된 사다리

문제는 더 있다. 이 과정은 철저히 계급 재생산의 구조와 결합돼 있다. 상류층 부모는 자녀에게 의대 입시를 위한 최적화된 경로를 제공한다. 강남, 자사고, 의학 논문 대필, 입시 컨설팅. 그 결과, 의사는 점점 더 ‘유전되는’ 직업이 되고 있다. 의사가 되기 위한 조건은 이제 ‘노력’이 아니라 ‘환경’이다. 그리고 그 환경을 갖지 못한 수십만 명의 청소년은 평생을 열등감과 박탈감 속에서 살아간다. 이것은 교육이 아니라 포기 선언이다.


의대를 평범하게 만드는 용기

그럼 대안은 있는가? 있다. 단순하다. 의사를 ‘특별하지 않은 직업’으로 만들면 된다. 공공의료 비중을 확대해 의료가 공공서비스임을 명확히 하고, 과도한 의료 소득에 누진세를 부과하게 되면 대학입시에서 의료계 쏠림을 억제할 수 있다. 결국 핵심은 ‘의사에게 주어지는 과도한 보상’을 줄이는 것이다. 그것은 곧 ‘의사가 타 직업군에 자괴감을 주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고, 이는 장기적으로 ‘정상적인 사회’로의 회복이다. 의대가 아닌 길을 간다고 해서, 그 길이 실패가 되지 않는 구조. 그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우리는 계속 아이들을 태우고 있다

요컨대, 지금 대한민국에서 의사는 ‘부와 안정을 위한 방패’로 기능하고 있다. 그러나 그 방패는 곧 사회 전체를 짓누르는 무게가 된다. 그 무게는 우리의 아이들을 짓누르고, 지성을 짓밟고, 미래를 질식시킨다. 의사라는 직업이 본래의 의료적 가치로 되돌아오지 않는 한, 우리는 앞으로도 수많은 ‘잃어버린 수재들’을 희생양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그 희생을 당연하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그 희생은 결코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