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에 귀천이 없다? 그 말이야말로 가장 교묘한 계급의 언어다
1. 유래와 격언: 아름다운 말의 함정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한국 사회에서 마치 도덕 교과서의 금과옥조처럼 반복된다. 이 말의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유사한 표현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다. 예를 들어, 미국의 벤자민 프랭클린은 “모든 정직한 일은 고귀하다(All honest work is honorable)”고 말했다. 프랑스에서는 “노동은 인간을 고귀하게 만든다(Le travail ennoblit l’homme)”는 격언이 있다. 이 말들은 노동의 가치를 강조하는 듯하지만, 현실에서는 노동의 종류에 따라 사회적 지위와 대우가 극명하게 갈린다.
2. 헌법 제11조: 종이 위의 평등
대한민국 헌법 제11조는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①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ㆍ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②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③훈장등의 영전은 이를 받은 자에게만 효력이 있고, 어떠한 특권도 이에 따르지 아니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 모든 조항을 비웃는다. 아니, 국민을 비웃는 것이 맞겠다. 고소득 전문직과 저임금 노동자 사이의 격차는 날로 커지고,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법 앞의 평등은 이상일 뿐, 현실에서는 권력과 돈이 법을 좌우한다. 헌법은 종이 위에만 존재하고, 실제로는 무시되고 있다.
3. 기득권층의 특권의식: 직업적 우월감의 실체
기득권층은 자신의 직업을 통해 우월감을 느끼며, 다른 직업을 하찮게 여긴다. 이는 단순한 자부심을 넘어, 사회적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된다.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은 자신들의 성공이 노력의 결과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출발선부터 다르다. 교육, 인맥, 자본 등 모든 면에서 유리한 위치에서 시작한 그들은, 자신들의 특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다른 직업을 하찮게 만든다.
4. 자판기 커피 횡령과 이중잣대: 법의 불공정성
한 버스기사가 자판기 커피를 마시려고 몇백 원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사건이 있었다. 만약 그가 검사나 교수였다면 같은 판결이 나왔을까? 현실에서는 고위직 종사자들이 수억 원의 비리를 저질러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경우가 당연시 되고 있다. 그 판결에 광분해야 정의로운 건가? 법은 약자에게는 잔혹했고, 강자에게는 관대하다. 이런 이중잣대가 법의 공정성을 훼손했다고 해서 누가 시스템에 손을 볼 것인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도 아니고 계란으로 바위치기도 아니다.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다.
5. 직업과 경제력: 입시전쟁의 현실
직업이 곧 경제력인 사회에서,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허울뿐이다. 학생들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치열한 입시전쟁을 벌이고, 이는 결국 고소득 직업을 얻기 위한 경쟁이다. 앞서 2번이나 글감으로 썼던 '의대 공화국'에서 언급했듯이 이런 현실에서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위선적이다. 학생들에게 이 말은 현실을 외면한 공허한 위로일 뿐이다. 아니, 위로는 커녕 노골적인 조롱과 다름없다.
6. 이젠 선언이 아닌 실천이 필요하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단지 차별을 금지하기 위한 선언에 불과하다. 이 말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모든 직업이 동등한 가치를 인정받고, 사회적 대우도 평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적 변화와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렇게 뻔한 결론으로 시금털털하게 끝내면 '시바한잔해'의 잡담이 아니다. 사회적 변화와 인식의 전환? 개뿔이다. 직업이라는 계급은 상위 계급의 양보와 배려로 귀천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하위 계급의 자각과 저항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말은 계속해서 현실을 가리는 가스라이팅에 불과할 것이다. 이제부터는 고귀하신 직업을 가진 놈의 집에 서 배관이 터지든 말든 아무도 가지마라. 당해봐야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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