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학당에서 탈출하지 못한 그들: 정치판의 코미디언들
1. 코미디가 된 정당, 코미디보다 못한 정치
'봉숭아학당'. 한때는 국민에게 웃음을 주던 레전드 코미디 코너였다. 황당한 캐릭터의 학생들이 나와서 자기 말만 하고, 서로 엇박자 속에 왁자지껄 떠드는 어수선한 코너였지만 그 자체가 재미였다. 그런데 '봉숭아학당'을 다시 소환하고 있다. 바로 2025년 대선에 마취되어 무려 8명의 후보가 난립한 '국민의힘' 덕분이다.
(꽤 오래전부터 오락가락, 티격태격하는 어수선한 정당을 봉숭아학당에 비유했다. 유명한 보수논객이 자주 언급했고 기사 타이틀에 단골로 등장했다. 대충 검색해도 십수년 전부터 여야를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소환했다)
굳이 8명의 후보들을 한명씩 언급하지 않아도 이 코미디프로가 여의도에 다시 살아난 듯한 착각이 든다. 단지 봉숭아학당과 차이가 있다면 씁쓸한 비웃음만 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대선 경선을 보면, 후보들은 번갈아가며 출마 선언을 했다가 뻔한(?) 이유로 며칠만에 철회하고, 다른 당의 후보 비방에 골몰하다가 자기들기리 치고 박는 등 '오락가락'의 끝판왕을 보여준다.
이쯤 되면 '정당'이란 말보단 '버라이어티 쇼'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릴 정도다. 그렇다고 흥행에 성공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수많은 정치평론가들이 그들의 코미디를 언급하고 있고 그중 일부가 또다시 '봉숭아학당'이라는 단어를 꺼내 들었다. 사라졌던 코미디가 이제 정치 풍자의 상징이 된 듯 하다.
왜 하필 '봉숭아학당'일까? 그건 단순히 웃기기 때문이 아니다. 각자 자기 주장만 반복하며 소통 없는 혼란을 일삼는 그 모습이, 정치인들의 무능과 오만, 집단적 인지부조화를 놀랍도록 정확히 묘사하기 때문이다. 국민이 원하는 건 정책과 비전인데, 정치인들이 내놓는 건 희극과 트라우마뿐이다.
2. 가능성은 없지만 포기하지 않는 그들
누가 봐도 안 되는 판인데도, 그들은 왜 자꾸 출마할까? 누구는 당의 '미래를 위한다'고 하고, 누구는 '국민이 원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단 하나, 이름 석 자 남기고 싶은 집착이 자리 잡고 있다. 말하자면, 가능성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오히려 더 필사적으로 덤빈다. 1%의 가능성이라도 언론의 조명을 받기만 하면, 훗날 총선 공천이나 방송 출연의 티켓으로 활용 가능하니까.
정치판은 이제 출세의 플랫폼이 되어버렸다. 예능 프로그램에 한 번 나간 개그맨이 갑자기 유튜버가 되듯, 한 번 경선에 나간 전직 관료나 국회의원은 ‘정치 원로’로 둔갑한다. 이쯤 되면 ‘정치’라는 단어가 무색하다. 이건 무대다. 스포트라이트가 꺼지지 않는 한, 그들은 계속 설 것이다. 그리고 국민은 또다시 그 쇼를 보게 된다. 물론 웃기진 않는다. 분노만 쌓일 뿐.
3. 권력의 늪에 빠진 자들
정치인으로서 일정 기간 정치에 몸담고, 임기가 지났으면 물러나서 사회로 복귀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이 나라의 정치인이라는 작자들은 어떻게 운좋게 당선되면 끝장을 본다. 말그대로 뽕을 뽑으려 한다. 3선, 4선은 기본이고, 낙선해도 ‘다음’을 외치며 다시 기어 나온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처럼. 물은 곧 권력이다. 이들은 권력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며, 자력으로는 절대 나올 줄 모른다.
더 놀라운 건, 이 현상이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좌우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의 공통 언어는 ‘나 아직 안 죽었다’다. 이런 집착은 단순한 욕망이 아니다. 무대에서 밀려난 순간, 자신의 존재 가치가 사라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치가 삶이 아닌, 존재 그 자체가 된 이들의 집착은 사이비 종교에 가깝다. 정치 광신도들, 그것이 지금 우리의 정치인들이다.
4. 뻔뻔한 자들을 퇴출시키는 법
문제는, 이들이 더 이상 수치를 모른다는 점이다. 망언을 해도, 성추문이 터져도, 선거에서 참패해도, 그들은 '반성한다'고 말해 놓고 금새 돌아온다. '자숙'은 고작 3개월짜리 요식행위고, 복귀는 마치 영웅의 귀환처럼 포장된다. 도대체 누가 이런 면죄부를 주는가? 바로 유권자다. 우리가 그들을 잊고, 용서하고, 투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 강력한 퇴출 방법은 단 하나다. 철저히 외면하는 곳. 다시 돌아오지 못하도록 이름을 부르지 말자. 인터뷰하지 말고, 방송에 초대하지 않아야 한다. SNS의 조롱조차 그들에게는 관심의 표현이다. 가장 큰 처벌은 무관심이다. 정치인에게 잊힌다는 건 곧 사망 선고나 다름없다.
이제 '봉숭아학당'은 TV 속 과거로 돌려보내자. 정치가 코미디를 닮았다는 말조차 아까운 시대를 끝내기 위해, 우리는 더는 웃으면 안 된다. 그리고 더는, 그들의 쇼를 봐줘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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