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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장난의 제국, 대선 TV토론을 말한다 – 아무도 믿지 않는 쇼를 왜 보고 있는가 대통령을 뽑는다는 일은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다. 토가 나올 정도로 비열하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한국에서 자신과 가족의 삶을 돌봐야 하는 사람들은 기꺼이 시간을 내어 투표장에 간다. 그들은 기대보다는 체념에 가까운 이상한 끌림으로 움직이고, 희망보다는 '그래도 저 인간은 아니니까'라는 최소한의 기준으로 표를 던진다. 그렇게 5년마다 한 번, 우리가 가진 유일한 통제 수단이자 민주주의의 상징인 투표를 해왔다. 이제 그런 중요한 투표를 앞두고 있다. 황당하게도 예정에도 없던 선거라서, 당연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의 너저분한 후보들이 TV토론을 벌이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시작부터 실망이다. 누가 더 나은 '지도자감'인가를 놓고 경쟁하는 것 보다, 누가 더 덜 구역질나는가를 두고 고르라는 듯한 토론이 계속된.. 더보기
‘카푸어’는 허세가 아니다 – 조롱의 사회에서 자존심을 소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잡담 1. “카푸어”에 대한 조롱의 본질은 자기혐오다한국 사회에서 ‘카푸어’라는 단어는 이제 하나의 낙인이 되었다. ‘허세’, ‘무리수’, ‘경제 관념 없는 놈’—그 뒤에 붙는 수식어들은 놀랍도록 잔혹하다. 고가의 수입차를 끌고 다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사람의 재정 상태를, 인생의 선택을, 그리고 존재 가치까지 재단한다. 그리고 대체로 그 조롱은, 자신은 그런 선택조차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나온다. 이런 조롱의 본질은 ‘우월감’이 아니라, 자기혐오의 투사다. “나는 감히 못 하는데, 쟤는 왜 해?”라는 질투심과, “나는 현실을 참고 사는데, 쟤는 왜 멋대로 살아?”라는 억울함. 조롱하는 이들은 ‘현명함’이라는 가면을 쓰지만, 실제로는 용기 있는 타인을 짓밟음으로써 자신의 무력감을 달랜다. 우리는 모두 어.. 더보기
“욜로 하다가 골로 간다”는 조롱을 이겨내라 : 욜로는 여전히 유효한 ‘진짜 삶’의 선택이다 1. 욜로는 왜 한국에서 급성장했는가: 불안이 낳은 거품'You Only Live Once'라는 꽤 쌈빡(?)한 것이 한국에 상륙했을 때, 그것은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탈진한 세대의 절규였고, 희망이 닫힌 사회에서 나온 체념의 반동이었다. 경제성장은 멈췄고, 취업은 바늘구멍이 되었으며, 집 한 채는 평생 빚을 지고도 가질 수 없는 신기루로 바뀌었다. 부모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 이른바 'N포세대'는 미래를 위한 투자가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들은 과거처럼 ‘지금 참고 미래에 보상받는다’는 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욜로는 거대한 해방구처럼 등장했다. 소비는 죄가 아니고, 퇴사는 용기이며, 여행은 삶의 필수로 둔갑했다. 신용카드 한도를 긁어가.. 더보기
『娶妻莫恨無良媒 書中有女顔如玉』 — 책 속엔 얼굴 고운 여자도 있다는데, 현실은 왜 인간을 등급으로 나눌까? “娶妻莫恨無良媒 書中有女顔如玉”아내를 맞음에 좋은 중매 없음 한탄하지 마라. 책속에 얼굴이 옥처럼 아름다운 여인 있다네. 표면적으로는 혼인을 주선하는 인연이 없어도 책을 통해 아름다운 여성(혹은 이상형)을 만날 수 있다는 말로 해석된다. (중국 북송의 3대 황제) 송진종이 강조했던 독서의 가치 가운데 하나로, 현시대에서도 종종 인용되는 이 문장은 학문과 수양을 통해 결국은 삶의 중요한 결실도 얻을 수 있다는 고무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과연 ‘書中有女顔如玉’이라는 문장이 시사하는 바는 단순한 이상향의 서사인가, 아니면 인간 욕망의 한 측면을 정교하게 포장한 자기기만인가? 현대 사회로 시점을 옮겨보자. 고전 문학 속 지식인의 낭만적인 자기계발은 이제 ‘스펙.. 더보기
"성적이 바뀌면 마누라 얼굴이 바뀐다": 한국 사회의 뻔뻔하고 치졸한 욕망의 민낯 1. 급훈이 던진 쓰레기, 사회가 주워 먹었다“10분 더 공부하면 니 마누라 얼굴과 몸매가 바뀐다.”언뜻 보면 유쾌한 교실 개그 같지만, 실상은 자못 음산하다. 한 고등학교의 급훈이었다던 이 문장은, 그저 교사 한 명의 유머 감각이 저질이었다는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다. 이 말은 한국 사회의 민낯, 곧 ‘성적 = 인생’, 더 나아가 ‘성적 = 결혼 시장에서의 가성비’라는 사고방식의 농축된 정수다. 우리는 그것을 웃으며 주워들었고, 시험기간에 서로 “이번 수학 망치면 마누라 외모 떨어짐”이라며 자학처럼 읊조렸다. 아무도 이 문장이 왜 ‘마누라’를 기준으로 성적의 대가를 상상하는지 묻지 않았다. 여성은 성적 향상의 인센티브이자 보상으로, 남성은 그 보상을 획득할 ‘능력’의 주체로만 묘사된다. 더 큰 문제는 .. 더보기
손톱 밑 가시와 썩은 염통: 2025년, 어떤 리더가 한국을 이끌어야 하는가 “손톱 밑에 가시 드는 줄은 알아도 염통 안이 곪는 것은 모른다.”이 속담은 우리가 얼마나 당장의 자극에 민감하고, 얼마나 장기적 재앙에는 무신경한지를 보여준다. 우리 사회는 사소한 논란에 분노하면서도, 구조적이고 치명적인 병폐에는 참으로 관대하다.리더 선택도 그렇다. 지금 한국은 사소한 ‘가시’에 예민한 리더를 선호한다. 유능하지만 위험한 리더를 불신하고, 별볼일 없지만 안전해 보이는 리더에게 표를 던지는 시대. 그런데 그 선택이 과연 '국익'에 부합하는 일일까?윷판 위 리더들: ‘모’는 위험하고 ‘걸’은 따분하다대한민국이란 윷판 위에 리더들을 배치해보자. 도, 개, 걸, 윷, 모.도는 느리고 별 성과 없다. 모는 판을 뒤집는다.문제는, 우리는 지금 모를 던지는 리더를 두려워한다. '모'는 불확실성, .. 더보기
“차도 , 집도 바꾸고… 마누라까지 바꾸는 남자들”– 돈벼락 맞은 한국남자들의 욕망에 대한 잡담 1. ‘차’, ‘집’, ‘마누라’가 상징하는 한국남자의 삼위일체적 욕망한국사회에서 남성에게 ‘차’, ‘집’, ‘부인’은 단순한 소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외적인 지위, 내적인 자존심, 그리고 사회적 성공을 입증하는 징표다.차는 ‘과시의 총아’다. 남자들에게 자동차는 이동 수단이 아니라 ‘움직이는 자기 과시의 무대’다. 배기량과 브랜드는 사회적 서열의 상징이며, 비싼 차를 모는 순간 '내가 달라졌다'는 착각에 빠진다. 내면의 불안, 자존감 결핍을 엔진 소리로 메우는 것이다.집은 ‘정착의 환상’이다. 한국남자에게 집은 '성공했다'는 최종 증명서이며 동시에 '내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이라는 자기 역할의 방패다. 그러나 로또급 돈이 생기면, 더 넓고 더 높은 집으로 옮긴다. 이제는 안정이 아닌 ‘우월함’을 보여주.. 더보기
칼도 썩을 ‘물베기’ – 참을 수 없이 유치하고 치졸한 한국 부부 갈등의 민낯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은 이제 그저 고전적인 착각의 유산일 뿐이다. 이젠 그 칼날이 상대의 감정을 도려내는 데 쓰이고, 물은 피로 물들어 흐른다. 최근 몇 년간 급격히 늘어난 부부 갈등 중재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들—예를 들어 《이혼숙려캠프》, 《결혼지옥》 등—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떤 골병에 들어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부부 갈등은 이제 연애 예능만큼이나 소비되며, 웃고 떠들며 볼 수 있는 오락거리가 되었다. 이혼이라는 인생의 결정적 갈림길이 ‘서사’로 포장되어 안방극장을 점령하는 시대, 우리는 그 안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1. 통계가 말하는 ‘사랑의 파산’, 그 이유를 따져보다2024년 기준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이혼 건수는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며 연간 약 10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