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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손톱 밑 가시와 썩은 염통: 2025년, 어떤 리더가 한국을 이끌어야 하는가

“손톱 밑에 가시 드는 줄은 알아도 염통 안이 곪는 것은 모른다.”
이 속담은 우리가 얼마나 당장의 자극에 민감하고, 얼마나 장기적 재앙에는 무신경한지를 보여준다. 우리 사회는 사소한 논란에 분노하면서도, 구조적이고 치명적인 병폐에는 참으로 관대하다.
리더 선택도 그렇다. 지금 한국은 사소한 ‘가시’에 예민한 리더를 선호한다. 유능하지만 위험한 리더를 불신하고, 별볼일 없지만 안전해 보이는 리더에게 표를 던지는 시대. 그런데 그 선택이 과연 '국익'에 부합하는 일일까?


윷판 위 리더들: ‘모’는 위험하고 ‘걸’은 따분하다

대한민국이란 윷판 위에 리더들을 배치해보자. 도, 개, 걸, 윷, 모.
도는 느리고 별 성과 없다. 모는 판을 뒤집는다.


문제는, 우리는 지금 모를 던지는 리더를 두려워한다. '모'는 불확실성, 극단성, 대개는 혼란을 동반한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걸’ 수준의 리더에게 익숙해졌다. 소극적이고 무난하며, 민원처리 공무원 같은 리더말이다. “잘하면 모, 못하면 도”인 리더는 변수가 크다. 불안정하고, 독선적이며, 때론 부패까지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판을 바꾼다. 역사를 만든다는 것은 항상 위험한 선택의 결과였다.

 

반면, “뭘 해도 걸을 못 넘는 리더”는 국가를 지루한 침몰로 이끈다. 변화는 없고, 구조는 낡아가고, 청년은 희망을 잃고, 노인은 분노로 늙어간다. 조용한 파국이다. '도'보다 못한 현실의 '걸'이 되어버리는 순간, 국민은 더 이상 분노할 힘조차 잃는다.

 

특정 정치인이 아님을 강력하게 언급하는 바이다.


국민 100% 소득 증가 vs 리더의 1000배 착복: 거래 가능한 부패?

이제 묻자. 만약 실질 소득이 100% 증가하는 대신, 대통령이 국민 평균 소득의 1000배를 뒤로 챙긴다면, 우리는 그를 처단해야 할까, 아니면 박수를 쳐야 할까? 도덕 교과서라면 "당연히 NO"다. 하지만 현실은 이중적이다. 우리는 매일 '공정'을 외치지만, '나만 잘 되면 괜찮다'는 말에도 고개를 끄덕인다.


100% 소득이 늘어난다? 그럼 대통령이 1000억을 착복하든, 1조를 숨기든, 나의 통장이 두 배로 불어난다면, 대부분의 국민은 침묵할 것이다. 정의? 청렴? 그건 내 월급이 오르고 나서의 문제다. 도덕은 생존이 확보된 자의 사치다. 결국 이 문제는 ‘국민을 얼마나 잘 속이고, 적당히 나눠줄 수 있느냐’의 게임일 뿐이다.


청렴한 리더와 마이너스 성장: 성스러움은 배를 불릴 수 없다

그렇다면 반대는 어떤가? 청렴한 리더가 등장해 예산을 투명하게 집행하고, 정실 인사는 근절되고, 사회가 맑아졌지만... 실질 소득은 10% 줄어든다. 당연히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이다. 교과서엔 꼭 실릴 리더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야 한다. 청렴은 감동을 주지만, 고통을 덜어주지 않는다.


지금 대한민국은 ‘정직한 가난’에 박수칠 여유 따위는 없다. 생존이 벼랑 끝에 몰려 있는 청년과, 노후가 불안한 장년에게 ‘청렴한 빈곤’을 선택하라는 건 위선이다. 청렴한 리더가 모든 해법을 갖는다는 착각은, 착하고 무능한 신화의 반복일 뿐이다. 그가 만든 건전한 시스템은 다음 선거에서 폐기될 가능성이 높고, 그 사이 국민은 잃은 10%를 다시 회복하려 무리수를 둔다. 결국 선의로 시작된 개혁은 ‘배고픔’ 앞에 무너진다.


부패한 카리스마 vs 청렴한 무능: 선택은 지옥에서

이제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부패하지만 강력한 리더십 vs 무능하지만 청렴한 리더. 

 

전자는 사회를 발전시킬 수도, 파멸시킬 수도 있다. 후자는 조용히 망하게 한다. 지금 한국 사회는 이 두 리더를 ‘차악’으로 골라야 하는 상태다. 카리스마는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청렴은 죄책감을 자극한다. 국민은 본능적으로 전자를 택한다. 왜냐면 욕망은 죄책감을 이기기 때문이다. 강력한 리더십은 그 자체로 희망처럼 보인다.


실제로, 부패한 정권도 성과가 있으면 오래 간다. 국민이 잊는 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반면, 청렴한 정권이 아무 성과도 없으면, 도덕성은 조롱거리로 전락한다. ‘착하기만 한 멍청이’는 가장 빨리 버려진다.


허상에 빠진 정치 소비자: 선택은 감정, 결과는 고통

그럼에도 한국의 유권자는 여전히 대통령 후보의 말발, 외모, 가족사, 화법, 눈빛에 집착한다. 공약은 읽지 않고, 능력은 체감하지 못한 채, 피상적인 ‘느낌’에 따라 투표한다.

 

후보의 고향, 스타일, 아내의 과거, 아들의 병역, 말투에 대한 밈(meme)만이 인터넷을 휩쓸고, '이념 전쟁'이라는 양념이 감각을 마비시킨다. 정치인은 아이돌처럼 소비되고, 정책은 배경음악으로 전락한다. 문제는, 그들의 선택이 나라의 삶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이 나라는 '손톱 밑 가시'만 뽑는 데 집중하다가 염통이 썩어가는 것도 모르고 있다. 가시를 뽑아준 리더는 칭송받고, 염통을 수술하려던 리더는 외면당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는 누구인가

우리가 선택해야 할 리더는, ‘잘하면 모, 못하면 도’가 되는 인물이어야 한다. 리스크가 있어도, 변화의 방향성이 있는 인물.
성공하면 판을 바꿀 수 있고, 실패해도 적어도 시도했다는 평가를 받을 사람. 청렴만 외치고, 조심성만 가득하며, 아무 결단도 내리지 못하는 '걸도 안 되는 리더'는 이 나라에 시간 낭비, 기회 손실, 그리고 침묵 속의 몰락만을 안겨줄 뿐이다.

 

물론, 마음에 흡족한 리더가 등장하더라도 우리는 다시 그를 비난할 것이다. 왜냐면 우리 자신이 이미 피상적인 정치 소비에 중독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리더의 품격보다, 리더의 요란한 아수성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국민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결국 지도자의 문제는, 그 지도자를 뽑은 우리의 거울이다. 그리고 그 거울 속에는 이미, 곪아가는 염통이 숨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