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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꼰대질’은 구닥다리, ‘개인주의’는 힙한가? - 기성세대와 MZ세대를 싸잡아 비판하는 냉철한 잡담

 

1. 꼰대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 꼰대질과 개인주의의 실체와 본질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꼰대질’을 나이 든 세대의 구태적인 유물처럼 간주해왔다. 나이 많은 상사, 고집 센 장인, 구닥다리 교수—이런 존재들이 휘두르는 권위주의적 태도, 강압적인 충고, 선민의식 가득한 훈계들을 통칭해서 '꼰대질'이라 부른다. 반면, MZ세대는 ‘개인주의’라는 말로 자기합리화를 시전하며, 타인의 조언조차 ‘침해’로 간주하는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문제는, 이 양극단이 서로를 비판하면서도 똑같이 타인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정의부터 내려보자. ‘꼰대질’은 일방적 권위를 앞세운 타인에 대한 간섭이다. 상하 관계를 당연시하고, 자신의 기준을 보편적 진리로 착각하며, 반론은 무례로 받아들인다. 꼰대질의 핵심은 타인의 선택지를 빼앗고, ‘그렇게 하면 안 돼’라는 식의 강요를 던지는 데 있다.

 

한편, ‘개인주의’는 원래 타인의 삶에 불필요하게 개입하지 않는다는 성숙한 태도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가 보여주는 개인주의는 점점 ‘타인에 대한 무관심’을 넘어 ‘타인을 내 불편함의 원인으로 여기는 피해망상적 고립’에 가깝다.

즉, ‘꼰대질’은 간섭의 과잉이고, ‘개인주의’는 간섭의 부재를 넘어선 무시다. 두 개념 모두 균형이 무너졌을 때 타인에게 깊은 불쾌감을 유발한다. 전자는 “왜 그걸 모르냐”며 사람을 깎아내리고, 후자는 “그걸 왜 나한테 말하냐”며 인간관계 자체를 차단해버린다.

 

그런데 이 모든 걸 마치 ‘기성세대는 꼰대’, ‘MZ는 개인주의적’이라며 세대의 문제로 환원해버리는 건 심각한 착각이다. 꼰대질은 나이와 무관하다. 어린 꼰대도 있다. 예컨대, 입사 3년 차에 불과한 대리 주제에 후임에게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눈치가 없냐”고 훈계하는 20대 후반도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조금만 의견이 다르면 반말로 윽박지르고 논쟁을 지적질로 전환시키는 30대도 많다. 그들은 늙은 꼰대가 아니라 젊은 꼰대일 뿐이다.

결국 꼰대질은 세대가 아니라 성향의 문제다. 조직이 주는 계급과 시간 속에서 자기 위치를 정당화하려는 본능이 발동하면, 인간은 나이 불문하고 꼰대가 된다. ‘기성세대 = 꼰대’라는 단순한 프레임은 진실에서 멀어질 뿐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게 만든다.


2. ‘나만 아니면 돼’주의 — MZ 개인주의는 새롭지도, 특별하지도 않다

개인주의라는 개념이 마치 MZ세대의 고유한 철학인 것처럼 소비되고 있지만, 사실 개인주의는 20세기 초반부터 꾸준히 인간의 삶을 지배해온 사상이다. '나는 나, 너는 너'라는 사고방식은 미국적 자유주의의 핵심이었고, 근대 시민사회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 MZ세대의 개인주의는, 고전적 개인주의와는 결이 다르다. 고전적 개인주의가 타인의 자유도 존중하는 성숙한 독립이라면, MZ 개인주의는 불편을 견디지 못하는 취약함과 공감력 부재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다.

 

예를 들어보자. “카톡은 읽씹해도 된다, 연락은 강요하는 게 아니다”라는 태도. 원칙적으로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나는 남의 필요에 응답할 책임이 없다”는 식의 단절이 녹아 있다. 인간관계란 쌍방의 책임과 배려로 유지되는데, 이들은 ‘개인주의’를 명분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반응을 최소화한다.

 

또한 MZ의 개인주의는 유별나게 ‘나의 감정’에만 집중한다. “그건 내 기준에선 불쾌해요”, “저는 그런 말 불편해요”라는 표현이 공감받는 시대다. 그런데 과연 그 불쾌함이 언제부터 절대적인 기준이 되었는가? 타인이 불편하다고 해서 무조건 타인의 말과 행동이 잘못된 걸까?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공공장소에서 아이를 야단치는 부모조차 ‘감정노동 유발자’로 몰아붙이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 어떤 말도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의 원인이 될 수 있고, 그러면 곧 ‘하지 말아야 할 말’이 된다. 이런 기형적 정서의 사회에선 결국 대화 자체가 사라진다. 모두가 불편해질까 봐 침묵하고, 침묵이 곧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MZ세대만의 특징도 아니라는 점이다.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질게, 대신 내 방식에 간섭하지 마’라는 식의 태도는 1990년대 X세대도 똑같이 가지고 있었다. MZ세대의 개인주의는 그저 디지털 환경 덕분에 더 즉각적이고, 더 확산 가능하고, 더 고립적으로 보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기성세대와 언론은 “요즘 애들은 이기적이다”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마치 새로운 현상인 것처럼 포장하고, 꼰대질에 대한 비판을 피해간다. 이는 단순한 세대 프레임 씌우기가 아니라, 자기반성 회피용 허위 명분 만들기에 불과하다. 꼰대들은 ‘MZ의 개인주의’를 비난하면서, 동시에 자기 권위는 유지하려는 이중 플레이를 하고 있다.


3. 세대갈등을 먹고 사는 산업 — ‘세대 프레임’이라는 새로운 기레기질

‘MZ세대 vs 기성세대’, ‘꼰대 vs 이기주의자’, ‘사표 내는 신입 vs 눈치 없는 상사’… 이 클리셰는 이제 하루가 멀다 하고 미디어에서 쏟아진다. 매체는 세대 갈등을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조장한다. 이들은 기사 클릭 수를 올리기 위해, 조회수를 위해, ‘선 긋기’를 한다.

 

기성세대가 ‘요즘 애들은 왜 이래’라고 하면 댓글에는 ‘늙은이들은 꼰대질만 한다’는 반응이 붙는다. 서로의 프레임을 강화시켜주는 이 구도는 매우 이익 구조가 뚜렷한 미디어 산업의 먹잇감이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도대체 누가 이 갈등을 통해 이득을 얻는가? 개인들은 상처받고, 회사는 세대 갈등으로 조직 효율이 저하되며, 사회 전반은 신뢰가 줄어드는데 말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좀 더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정말 ‘MZ세대는 이기적이고 공감 부족한 존재’이며 ‘기성세대는 구시대적 꼰대’인가? 아니면, 우리 모두가 각각의 생애주기에서 겪는 일시적 태도와 특성을 지나치게 일반화하고 있는 것인가?

문제는 세대가 아니다. 미성숙한 인간성과 단절된 소통이 문제다. ‘말을 안 들어서 꼰대가 되고’, ‘말을 안 해서 고립된 개인이 된다’. 그것이 진짜 문제다.

 

세대를 갈라치기보단, 사람을 봐야 한다. 꼰대는 어디에나 있고, 불통도 어디에나 있다. 단지 그 표현 방식이 세대에 따라 다르게 보일 뿐이다. 프레임은 본질을 가리고, 본질은 소통의 실마리를 감춘다.

 

우리는 이제 누군가를 쉽게 정의 내리는 언어들에 저항해야 한다. 꼰대질도, 이기적 개인주의도, 모두 삶의 한 장면일 수 있다. 중요한 건, 그 장면을 어떻게 읽고 해석하고 반응할 것인지에 대한 성숙함이다.

그리고 그 성숙함은 세대가 아니라, 사람에게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