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은 축소된 사회다. 태어났으니 살아야 하고, 살아야 하니 일해야 하며, 일하자니 사람들과 부대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무슨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누구랑 일하느냐’다. 그리고 그 누구는 대체로 두 종류로 나뉜다. 의욕은 넘치되 고집은 마치 철판을 삼켜버린 듯한 자와, 고집은 없지만 의욕도 반쯤 증발해버린 자.
자~, 당신이라면 어느 쪽을 고르겠는가? 정답은 없다. 그저 덜 피곤한 지옥을 택할 뿐이다.
1. 고집이 절대 꺾이지 않는 자와의 불편한 삼위일체
먼저 ‘고집이 철판급’인 인간과 일해야 할 운명에 처했을 때. 이 인간이 상사라면, 당신은 매일 아침 출근길에 “오늘은 어떤 생고집으로 지랄을 할까?”를 고민하게 된다. 회의 중 의견을 내보려다 그의 눈에 “지금 날 부정한 거냐?”는 번개가 번쩍이면, 당신의 기획안은 ‘망상’으로 전락하고, 상사가 무의식적으로 고집하는 구상만이 신의 계시가 된다. 수정 요청은? 웃기지 마라. 그건 곧 ‘네가 잘못했다’는 선언이다. 그의 자존심은 아스팔트보다 단단하다.
이 인간이 동료일 때는 더 비극적이다. 팀플이라고 불리는 이 야만의 협업 속에서, 그는 항상 “그건 아닌 것 같은데”를 반복하며 회의의 질을 심해로 끌고 간다. 당신은 점점 “그럼 네가 다 해”라는 말을 삼켜가며 위궤양에 시달린다. 이때 그는 말한다. “우린 의견을 조율해야지.” 아니, 조율이 아니라 굴복을 강요하는 거잖나?
가장 끔찍한 건, 그가 후배일 때다. 가르치려 들면 “전 이렇게 해왔어요”가 자동반사로 튀어나오고, 잘못이 생겨도 “제 방식대로 했을 뿐인데요”라며 ‘충직한 실패’를 자랑한다. 이쯤 되면 그는 피교육자가 아니라, 고집의 종교를 믿는 선교사다. 당신의 조언은 이단의 경전이고, 그는 기어이 자기 믿음대로 망한다. 문제는 그 폐허를 당신이 치워야 한다는 것.
2. 일을 망치는 방식의 차이 – 열정적 파괴 vs 무기력한 무해함
의욕 넘치는 고집쟁이는 일을 어떻게 망칠까? 답은 간단하다. 빠르게, 강하게, 확실하게. 마치 방향을 잘못 잡은 기관차처럼, 그들은 엉뚱한 아이디어에 가속을 붙여 전사적 자원을 낭비한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망해도 “과정은 좋았다”고 자위하며, 동료들의 피로도를 소각로에 쑤셔 넣는다. 반면, 의욕 없는 무고집은 일을 서서히, 소리 없이, 아주 심심하게 망친다. 보고서가 제때 안 나오고, 회의 발언은 리모컨보다 조용하며, 업무는 늘 아슬아슬하게 마감 직전에 처리된다. 사람은 안 괴롭히지만, 팀은 지쳐간다.
그럼 둘 중에 누가 더 위험한가? 정답은 너무 명확해서 성의도 없다. 의욕 넘치는 고집쟁이다. 그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방향성을 파괴한다. 그는 팀 전체를 전쟁터로 만들고, 문제의 발생이 아니라 문제의 확산을 유도한다. 무기력한 자는 적어도 팀의 속도를 늦출 뿐, 방향을 틀지는 않는다. 그래서 후자는 지루한 잡음일 뿐이지만, 전자는 사고의 진원지다.
3. “무식한 놈의 열정”은 진짜 무섭다
실무에서 “무식한 놈이 의욕까지 넘치면 일을 망친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다. 오히려 경고다. 자칭 전문가인, K는 아무런 협의도 없이 민감한 데이터를 통째로 날려버렸다. 왜냐고? “정리 좀 하려고요.” 백업도 안 해두고. 이런 자는 늘 뭔가를 ‘개선하겠다’며 건드린다. 개선이 아니라 훼손이다.
어떤 날은 문서양식을 다 바꿔놔 팀장이 그날 하루 욕을 백 번 한다. 필터를 써서 정렬해놓고 저장해버려 데이터가 다 꼬인 사건은 또 어떤가? 그저 “깔끔해 보여서요”라고 말하는 얼굴에선 반성의 기색은 없고, 오히려 자신감이 넘쳤다.
이런 인간의 공통점은 뭘까?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를 모른다. 그래서 그 무지를 신념처럼 휘두르며, 열정이라는 칼날에 감싸서 정당화한다. “그래도 노력했잖아요.” 아니, 우린 그 노력을 원하지 않았다고. 실무에서 가장 무서운 건 ‘자기 확신을 가진 비전문가’다. 그들은 주어진 업무를 ‘창의적’으로 재해석해 팀을 지옥으로 안내한다. 그들은 셀프가스라이팅으로 '전문가'를 자처하며, 조직을 신나게 돌려놓는다. 물론 중심이 아니라 변두리로.
4. 착한 사람이 손해 보는 회사에서 살아남기
한편, 고집은 없지만 의욕도 없어 보이는 사람이 있다. 그는 의견을 잘 받아들이고, 시키는 일도 묵묵히 한다. 문제는 회사라는 곳이 묵묵함을 의욕 없음으로, 협조를 존재감 없음으로 해석한다는 점이다. 그 결과? 그는 평가에서 ‘조용한데 존재감 없음’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승진은 늘 남의 이야기다.
어떻게 해야 할까? 존재감을 과시하되, 고집은 끝까지 감추어야 한다. 즉, 전략적으로 의욕 있는 척을 하라. 회의에서 질문 하나 던지고, “이런 건 어떤가요?” 하고 던지는 정도면 충분하다. 고집은 부리지 않되, 주체적인 존재라는 환상을 심어야 한다. 마치 아무 맛도 안 나는 음식이 포장만 화려한 것처럼, 일종의 ‘착한 사람 마케팅’이 필요한 것이다.
무대에서 조연이라도, 박수는 받아야 한다. 남이 알아주지 않는 조용한 헌신은 고작 성과 없는 희생으로 치부된다.
맺으며;
고집쟁이와 무기력한 자 사이에서 고르라면, 차라리 고집 없는 무기력을 택하겠다. 고집은 병이고, 의욕은 칼이다. 둘 다 있으면 피를 본다. 직장은 무능보다 폭주가 더 위험한 유일한 전쟁터다. 그리고 그 전쟁터에서 살아남으려면, 가장 중요한 건 실력도, 열정도, 고집도 아니다. 눈치다.
눈치 없으면, 일 잘해도 밉고, 일 못하면 더 밉다. 고집부리는 자는 팀의 적이 되고, 의욕 없는 자는 조직의 그림자가 된다. 그 틈에서 살아남는 법? 고집은 넣어두고, 의욕은 꺼내 보여주되, 결정적인 순간엔 조용히 빠지는 것. 그것이 현대 직장인의 살아 있는 지혜다.
'좌충우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실수보다 불편한 진실이 더 무서운 사람들: 위선의 평등주의를 말하다 (4) | 2025.06.05 |
---|---|
철없다는 말은 누가 먼저 했는가: 대선 정국에서 드러난 세대 간 ‘정치 꼰대질’의 민낯과 자기모순의 연속성에 대하여 (3) | 2025.05.31 |
동전주에 대한 조롱, 그 경멸의 프레임을 과감하게 비트는 잡담 (2) | 2025.05.26 |
말장난의 제국, 대선 TV토론을 말한다 – 아무도 믿지 않는 쇼를 왜 보고 있는가 (5) | 2025.05.21 |
손톱 밑 가시와 썩은 염통: 2025년, 어떤 리더가 한국을 이끌어야 하는가 (9) | 2025.0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