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뉴스가 아니라 장사꾼: ‘기레기’의 헤드라인 장난질
‘기레기’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풍자다. 기자라는 엄숙한 직함에 기생충과도 같은 경멸의 어미를 붙인 조어는, 뉴스 산업이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물론 모든 기자가 그런 건 아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단어가 만들어진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클릭 수가 권력이고, 조회 수가 곧 광고 수익으로 전환되는 이 미친 구조 속에서 일부 기자는 언론인이 아닌 장사꾼으로 전락했다. 아니, 장사꾼이라는 표현도 과하다. 최소한의 양심과 품질을 지키려는 진짜 장사꾼들에게 실례니까.
“[단독] BTS, 전격 은퇴 선언?”
기사를 클릭해 보면 정작 내용은 ‘BTS 멤버 중 한 명이 개인 휴식기를 갖는다’는 이야기다. 이게 언론인가? 이건 노점상도 하지 않는 방식이다. 길거리에서 과일 박스 위에 ‘5천 원’이라 써놓고 다가가면 ‘한 알에 5천 원’이라고 말하는 사기꾼과 다를 게 없다. 그런데 이들은 감히 펜을 들고 “진실을 전한다”고 주장한다. 웃기는 이야기다.
‘어그로’는 본래 게임 용어다. 적의 시선을 끌어 플레이어를 공격하게 만드는 전략. 그런데 이 단어가 인터넷을 통해 확장되며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여 관심을 끌어내는 행위’로 의미가 바뀌었다. 그리고 이 어그로의 최상위 종착지가 바로 기사의 제목이다. 방향성과 논조, 사실관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어그로 헤드라인’ 하나 잘 걸면 조회 수는 폭등하고, 광고주는 기뻐한다. 심지어 ‘정정보도’ 한 줄 내면 끝이다. 책임은 가볍고, 이득은 막대하다. 이쯤 되면 기자라는 직함이 부끄럽지 않은가?
기자라는 직업은 사실을 전달하는 ‘중립적 통로’여야 한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시선을 강탈하는 ‘사기적 미끼’로 변모했다. 이런 자들이 내세우는 변명은 늘 똑같다. “경쟁이 심해서요.” 그래, 맞다. 경쟁은 심하다. 하지만 그래서 더 나은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눈에 띄는 말장난을 던지겠다는 것이 해명이라면, 당신들은 기자가 아니다. ‘검색 최적화형 거지근성 장사꾼’일 뿐이다.
2. 경계선 위에서 춤추는 유튜버: 썸네일의 야비한 기만
며칠 전, 우연히 라디오를 듣다가 광고 하나에 소름이 돋았다.
“못생기고 뚱뚱할 필요 없습니다. 이제 못생기기만 하세요.”
첫 문장을 들은 순간, ‘이건 뭔가 잘못된 광고다’라고 직감했다. 성형외과? 결혼정보회사? 아니면 다이어트 보조제? 전부 빗나갔다. 정답은 헬스클럽이다. 미친 광고라고? 글쎄, 나는 오히려 무릎을 쳤다. 적어도 이 광고는 한 가지 분명한 점이 있다. ‘경계선 위의 어그로’를 정확히 조율했다는 점이다.
이 광고는 자극적이다. 그러나 방향이 명확하다. 목적은 사람을 비하하려는 게 아니다. 운동을 하라는 메시지를 가장 짧고 강력하게 전달하고 있다. 이건 ‘기획된 어그로’의 긍정적 사례다. 하지만 유튜브로 넘어가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유튜버의 썸네일은 이제 거의 '가짜뉴스 박람회' 수준이다.
“3일 만에 10kg 감량?! 방법 공개!”
“남편에게 이혼 당하고 5억 벌었습니다”
“의사가 절대 말 안 해주는 충격적 건강법!”
이쯤 되면 이건 정보가 아니다. 거대한 사기극이다.
심지어 그 영상의 본문은 대부분 ‘그럴 수도 있다’는 식의 애매모호한 말로 가득하다. 썸네일만으로 시선을 끌고, 정작 내용은 ‘의견’이나 ‘감상’에 불과하다. 실질적인 정보나 팩트는 거의 없다. ‘썸네일 사기’가 콘텐츠 전략의 핵심인 시대다.
이런 자들은 정보 전달자가 아니라, 감정 조작자다.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다. ‘클릭’. 그리고 그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과장, 허위, 자극, 선정, 비하, 왜곡, 무엇이든 다 쓴다. ‘당신의 감정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겠다’는 태도가 너무도 적나라하다. 문제는 이것이 너무나 잘 먹힌다는 데 있다. 결국 우리가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정보를 찾아 나섰던 우리는 어느 순간 ‘썸네일 중독자’가 되어버렸다. 진지한 콘텐츠는 외면하고, 싸구려 감정을 자극하는 그림과 문구에만 반응한다. 어그로는 우리 안의 이기심과 자격지심, 피상적 욕망을 정확히 겨냥한다. 그리고 거기엔 윤리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이건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사회적 병리다.
3. 법적 장치 없는 시대의 클릭 낚시질, 우리가 당하는 이유
우리는 날마다 선택한다. 어떤 뉴스 제목을 클릭할지, 어떤 영상의 썸네일에 끌릴지. 그러나 그 선택은 '자유의지'가 아니다. 그것은 '유도된 반응'이다. 알고리즘과 어그로에 의해 설계된 심리적 자극은, 우리가 정보를 선택할 자유마저 박탈하고 있다. 문제는 이 유도된 반응을 막을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기자는 아무 책임 없이 자극적인 제목을 걸고, 나중에 ‘정정보도’라는 최소한의 페널티로 빠져나간다. 유튜버는 명백한 허위 정보를 뿌리고도, “제 의견일 뿐입니다”라고 말하면 끝이다. 그들이 파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착각이며, 그것을 감정적으로 소비하는 우리는 ‘스스로 낚이는 시스템’ 안에서 소모되고 있다.
이건 단순한 피로함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심리적 피폐화다. 더 이상 우리는 정보의 진위를 가릴 여유조차 없다. 모든 콘텐츠가 어그로로 뒤덮였기 때문에, 정직한 콘텐츠는 오히려 묻히고 만다.
정말로 중요한 정보는 클릭을 못 끌기 때문에 버려지고, 별볼일 없는 쓰레기들이 ‘눈에 띈다’는 이유 하나로 사회적 파급력을 가진다. 이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다.
결국, 우리는 ‘의도적 자극의 피로’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어그로가 범람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진실을 보려면 먼저 '걸러서' 봐야 하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그건 불공정하다. 왜 우리가 성실하지 않은 자들을 구분하기 위해, 일일이 ‘팩트체크’를 하고, ‘경험적으로’ 속지 않도록 학습해야 하는가?
이제는 법과 제도의 영역으로 넘어와야 할 때다. 허위 제목을 통한 클릭 낚시는 명백한 소비자 기만이다. 유튜브 영상의 썸네일이 실제 내용과 현격히 다르면, 최소한 ‘오인 유도 콘텐츠’로 분류되어야 한다. 이는 광고의 허위표기처럼, 정보 소비자에 대한 명백한 사기다. 그런데 왜 이것만은 예외인가?
지금 우리는 ‘콘텐츠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너무 많은 쓰레기를 용인하고 있다. 물론, 표현의 자유는 중요하다. 그러나 거짓말과 사기, 왜곡과 낚시가 그 안에 포함될 수는 없다. 이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기만의 자유’일 뿐이다.
[맺으며]
‘어그로’는 더 이상 단순한 장난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자극중독 증후군의 상징이 되었고, 우리가 얼마나 쉽게 감정에 휘둘리는지, 그리고 그 감정이 얼마나 무책임한 방식으로 소비되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우리는 지금 어그로가 만든 이 가짜 세상 속에서, 진짜를 찾기 위해 진을 빼는 기이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가짜에 속지 않기 위해 진짜를 찾는 노력을 계속해야 하는 시대, 그것은 너무나 피곤한 일이다. 이 피로감이 개인의 몫이 되어선 안 된다. 이제는 사회 전체가 이 피로를 줄이기 위한 제도적 응답을 고민해야 한다. 어그로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클릭이 아니라 책임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요구할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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