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없는 즐거움? 'Sober Curious'
“한 잔 할래?”는 한국에서 불타는 청춘들의 사랑 고백만큼이나 흔한 말이다. 한국인 종족 특성상, 대화를 시작할 때 뿐만 아니라 헤어질때도 '나중에 한잔 하자'라고 씨부린다. 심지어 혼자 있을 때 조차 이 멘트를 중얼거리는 심각한 부류들도 있으니 (음주자들에겐) 한국에서 술없는 즐거움은 상상하기 힘들다. 소주든, 맥주든 주종과 상관없이 술이 문화고, 도피이며, 일종의 ‘합법적인 마약’이다. 그런데 요즘 괴상망측한 트렌드가 번지고 있다. 이름하여 'Sober Curious', 술을 끊은 것도 아니고, 금주를 다짐한 것도 아니면서 ‘술 없이도 즐겁게 살 수 있을까’를 실험해보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트렌드다. 반쯤은 허세 같고 반쯤은 건강 트렌드인 이 운동은, 사실 현대인의 허약한 정신 상태와 시스템의 결함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자화상에 불과하다.
Sober Curious, 그 위선적인 등장
'Sober Curious'란 “술을 마시는 사회적 압력에서 벗어나, 자발적으로 술을 줄이거나 끊으며 자신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시도”를 말한다. 이는 작가 Ruby Warrington의 2018년 저서 『Sober Curious』에서 대중화되었다. 그녀는 “술 없이도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인생을 즐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편견에 가득찬 '시바한잔해'의 식견으로는) 물론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주말마다 요가하고, 아보카도 토스트를 먹으며, 인스타그램에 명상 사진을 올리는 계층에 국한된다.
‘Sober Curious’를 실천하는 (가장 기초적인) 3가지 방법
-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 실천하기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세요." 술 대신 명상 어플을 켜고, 감정의 소용돌이를 술병이 아닌 호흡에 담아내란다. 물론 대출이자 고지서도 명상을 통해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 논알코올 파티 열기
논알코올 맥주와 콤부차로 파티를 연다. “취하지 않아도 재미있어!”를 외치지만, 대부분은 ‘자기 자신에게 최면 걸기’ 수준이다. 다만 SNS에 올리기 좋은 건 인정. - 디지털 커뮤니티 참여하기
‘Sober Curious Korea’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인증샷을 올리고, 금주 일기를 나눈다. 남의 인생을 소비하며 내 정신 건강을 유지하는 또 하나의 역설이다.
괜한 짓을 한 사례: 신세계라도 열린 듯이 착각하는 사람들
- 직장인 김 모 씨 (38세)
“회식이 사라지니 인생이 생겼다.” 그는 매일 밤 진탕 마시고 아침에 쓰린 속을 부여잡던 삶을 끝내고, 헬스와 독서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그는 이제 회식 자리에 “물 마시겠습니다”라고 당당히 말한다. 물론 뒷말도 따라온다. - 프리랜서 디자이너 이 모 씨 (29세)
술 없이 인간관계를 시작하니 ‘진짜 친구’가 남았다고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술이 없으니 위선도 줄었다”고. 정작 인간관계가 반으로 줄었다는 건, 본인만 모른다. - 작가 정 모 씨 (45세)
알코올 없는 삶으로 창작의 질이 높아졌다고 한다. 맨정신으로도 세상에 대한 혐오를 뾰족하게 표현할 수 있으니, 이건 진짜 진화라고 착각할 수 있겠지만 어짜피 자기 위로다.
현실은 깨우친 사례: 한국 사회가 그리 만만치 않다
- 사회 초년생 박 모 씨 (27세)
허구헌날 술 푸는 놈이 금주를 선언하자마자 “이상한 애”로 낙인찍혔다. 회식 자리에선 ‘혼자 튄다’는 말까지 들었다. 결국 그는 Sober Curious라는 허세를 버리고 ‘사회화’를 택했다. - 워킹맘 최 모 씨 (41세)
술 대신 운동, 취미를 찾았지만 스트레스는 그대로였다. 오히려 “왜 난 술 없이도 불행한가”라는 자책감만 남았다. 술을 끊는다고 감정까지 정화되진 않는다. 차라리 다른 걸로 감정을 정화시킨 후에 술을 마시련다. - 대학생 윤 모 씨 (23세)
친구들과의 유대가 줄었다. 술은 대화의 윤활유였고, ‘솔직한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장치였는데, 이젠 친구들 사이에서 ‘건강충’으로 소외되고 있다. 적당한 윤활유가 없으면 폐차되는 것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술 없는 즐거움이 아니라, 즐거움 없는 사회다
'Sober Curious'는 개인의 의지로 포장된 사회적 피로의 반영이다. 우리는 술 없이는 인간관계도, 스트레스도, 기쁨도 감당할 수 없는 구조에 익숙해져 있다. 술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증상이다. 그걸 치우는 순간 문제의 본질이 드러난다. 즉, 술이 아니라 이 사회 자체가 중독적이다.
그럼에도 'Sober Curious'는 의미 있다. 술 없이 살 수 있다는 실험이 아니라, 술 없이도 견딜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전은 여기서 시작된다. 진짜 문제는 술이 아니라, 술 없이는 못 버티는 우리 자신이다. Sober Curious는 결국 인간이 얼마나 외롭고, 피곤하며, 체념했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다. 이 사회가 진짜 필요한 건 금주가 아니라, 정신의 재건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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