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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실실

신화적인 투자가의 말을 맹신하며 자위하는 소시민 투자자들의 애잔한 자기기만에 대하여

 

“장수와 복리"로 150조원의 거물이 된 노인, 그를 추앙하는 평범한 자들의 딜레마”


1. 복리의 신? 아니다. 장수의 로또에 당첨된 사나이

“워런 버핏은 65세 이후, 전체 재산의 90%를 벌었다.”
이 문장은 투자 교과서에 마치 묵시록처럼 새겨져 있다. 투자에 성공하고 싶다면 버핏을 따르라는 것이다. 그런데, 잠깐. 정말 그렇게 단순한가? 좀 더 면밀히 뜯어보자. 그의 말대로 '복리의 힘'이 성공의 열쇠라면,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복리가 제대로 작동하기까지, 얼마나 오래 살아야 하지?”
 
답은 간단하다. 적어도 95세까지는 살아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워런 버핏은 1930년생이다. 65세였던 1995년 즈음엔 그저 부자 정도였지만, 그 이후가 진짜 승부였다. 복리의 마법은 결국 '시간'을 먹고 자란다.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이제 일반인도 시간은 충분하다고 생각하나? 버핏은 95년 전에 ‘장수’라는 확률 낮은 로또에 당첨된 사람이다. 역사와 생존 그 자체가 전략이었다. 
 
문제는 이 현실을 외면한 채, 많은 이들이 그를 마치 평범한 우리도 도달 가능한 롤모델인 것처럼 신봉한다는 데 있다. 워런 버핏이 65세에 사망했다면, 그의 투자철학은 지금처럼 숭배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65세에 사망한다면? 복리니, 장기투자니 하는 말들은 장례식장에서도 적용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워런 버핏식 장기투자란, “죽지 않는다는 가정”이라는 말장난 위에 세워진 공중누각이다.
그러니 제발, 그를 믿고 '장기투자'를 맹신하지 마라. 당신의 생애는 그만큼 길지 않다. 적어도 평균 수명은 복리보다 더 정직하다.


2. 그는 글로벌 ‘리딩방’ 운영자다. 단, 고상하게 포장된.

코인 리딩방은 욕을 먹는다. 남의 돈 끌어모아 특정 자산에 몰빵시키고, 정작 본인은 몰래 빠져나가면서 “책임은 투자자 본인”이라는 패턴이다. 그런데 워런 버핏이 이와 유사하다고 말하면 정신나간 놈이라고 할까? 감히 투자의 신을 욕먹이는 사회부적응자의 질투라고 해도 상관없다. 어짜피 잡담이니 하고픈 말은 하는 거다.
 
그는 매년 ‘버크셔 해서웨이’ 주총에서 투자 철학을 설파한다. 미디어는 이를 받아 적고, 유튜브와 트위터는 이를 퍼나른다. 그는 특정 종목 뿐만 아니라 특정 자산, 산업, 심지어 특정 국가에 대해 '평가'를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시장은 실제로 그에 따라 움직인다. 주가가 들썩인다. 전 세계 투자자들이 그의 말 한마디에 귀를 기울인다.
 
이쯤 되면 의문이 든다. 그는 왜 아무 제재도 받지 않는가? 그가 특정 종목이나 분야를 띄워도 ‘의견’이고, ‘철학’이고, ‘가르침’이다. 하지만 당신이 비슷한 짓을 한다면? '시세조종' 내지는 '불법 리딩방'이다. 결국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리딩방의 방장이다. 이름하여 “버핏 유니버스.”
 
게다가 그는 가상화폐에 대해 극단적으로 부정적이다. “비트코인은 쥐약”이라는 말은 유명하다. 그런데, 주목하라. 이 발언 하나로 수천만의 자산 배분이 흔들린다. 이런 힘을 가진 인물이 굳이, ‘중립적’이라고 믿는다면, 그건 순진한 것이다. 그는 모든 투자자 위에 군림하는 미디어의 제왕이며, 자본의 승부사다. 교묘하고 세련된 리딩방. 단,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 자식에게는 돈 대신 ‘책임’? 듣기 좋지만 너무 비싼 말장난

워런 버핏은 “재산의 99%를 기부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대중은 감동한다. “역시 그릇이 다르다.” 하지만 잠깐, 과연 정말 그럴까? 
 
그의 기부는 철저히 ‘신탁’ 구조다. 즉, 자녀들이 직접적인 상속을 받지는 않지만, 그 신탁을 관리한다. 바꿔 말해, 자녀들은 ‘부의 정기권’을 가진 셈이다.  그들은 직접 돈을 쓸 수 없지만, 운용하고 통제한다. 이건 마치 “나는 음식을 먹지 않아. 다만 냄새만 맡지.”라는 말과 같다. 사실상, 부는 대물림되었다. 이름만 바꿨을 뿐이다. 
 
워런 버핏은 이를 “책임의 상속”이라고 말한다. “명예와 책임을 물려준다”고도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 알면서 모른척 하는 것 같다. 책임은 명예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아니, 정확히는 통제 권한의 포장이다. 그들은 돈을 직접 사용하지 않지만, 어디에 쓰일지 결정한다. 심지어 이는 도덕적 명분까지 가진다. “공익을 위한 신탁”이라는 표현은, 이 모든 구조를 비판 불가능한 성역으로 만든다.
 
여기서 의문을 던진다. 어마무시한 부를 가진 노인의 비범한(?) 상속 구조를 ‘절대적 선행’으로 소비해야 하는가? 왜 세계 최고의 부자는, 가장 고상한 기법으로 '부의 대물림'을 합리화할 수 있는가? 그의 재산을 질투하는 것도, 그의 말장난에 의심을 품는 것도 죄는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가 여전히 감각을 잃지 않았다는 증거다.


워런 버핏을 추앙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가 만든 판 위에서 노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는 당신보다 오래 살았고, 당신보다 많은 자본을 가졌고, (투자에 관해서는) 당신보다 그럴싸하게 말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보다 훨씬 더 자본주의적이다. 그를 따르겠다면, 최소한 당신의 현실부터 직시하라. 버핏이 말하는 ‘단순한 투자 원칙’은, 당신의 피와 시간을 요구하는 복잡한 구조 속에 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수많은 투자철학을 외우는 대신, 당신의 수명을 계산하라. 그리고 그 다음에, 당신의 잔고를 보라. 그래도 워런 버핏을 따르겠다면, (150조원은 잊고) 최소한 이건 명심하라.
“그는 신이 아니라, 장수한 인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