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하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게임중독이 혼술중독보다 위험할까?' 게임중독은 당연히 안좋다. 누가 모르겠냐? 근데, 경고성 내지는 협박성 포스팅만 즐비하게 나오니까 너무 식상하다. 심각한 게임중독은 치료가 필요하다. 그런데! 과연 심각한 중독자들이 얼마나 많을지 궁금하다. 적당한(?) 중독은 삶의 활력이 될 수도 있다는 '무지성 전제'를 깔고 잡담을 시작한다.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게임을 즐기는 모든 중년을 위한 위로의 잡담이다.)
1. 중독이란 무엇인가: 기준 없는 기준과 숫자의 함정
게임 중독. 중독? 말만 들어도 병원 침대에 누워 링거 꽂고 있는 이미지가 자동 재생된다. 그런데 게임 중독의 정확한 기준은 무엇인가? WHO는 2019년 "게임 장애(Gaming Disorder)"를 질병 코드에 포함시켰다. 하루 3시간 이상 게임을 하거나,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하며, 부정적인 결과에도 불구하고 계속 게임을 하는 상태. 즉, 누구든 일이 잘 안 풀리면 게임 좀 하다보면 ‘중독자’가 된다.
대한민국 보건복지부 산하의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에 따르면, 국내 성인 중 약 1.8%가 게임 중독 위험군이라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건 이 수치가 청소년(3.1%)보다 낮다. 오히려 중년이 청소년보다 게임에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는 뜻 아닌가? 중독이나 위험군이니 하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게임을 즐기는 중년은 적어도 30%는 넘을것이다. 경험상 주변의 40, 50대들을 보면 담배피우는 사람보다 게임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 요즘 세태다.
미국의 Pew Research Center에 따르면, 30대 후반에서 50대 남성 중 42%가 정기적으로 게임을 한다. 그리고 이 중 절반 이상은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는 ‘건강한 유희’로 게임을 소비한다. 그럼에도 유독 한국에서는 게임을 즐기면 ‘현실 도피자’, ‘가정 방치자’, ‘패배자’ 취급을 받는다. 도대체 누가 기준을 정했고, 왜 한국만 이렇게 엄격한가? 별다른 취미없이 게임에 살짝 몰입하면 '게임 중독'이라고 다급하게 낙인을 찍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2. "게임 좀 그만해요"라는 말의 위선
대한민국 사회는 중년 남성에게 모순된 요구를 한다. "가정을 책임져라, 감정을 표현하지 마라, 무너지지 마라." 그렇게 20년을 버텼더니 이제 와서 "게임은 애들이나 하는 거지, 어른이 왜 그래요?"라고 묻는다. 그래, 질문 잘했다. 왜 어른이 게임을 하냐고?
그럼 반대로 묻자. 왜 어른은 술을 마시냐? 왜 어른은 주말마다 골프장을 배회하냐? 왜 어른은 드라마를 정주행하고, 스포츠 중계에 소리 지르며, 도박장에 기웃거리냐? 게임만 유독 '중독'이고, 나머지는 다 '취미'인가? 중년이 게임하면 철없는 사람이고, 회식 자리에서 소주병 깨면 ‘사회성 있는 어른’인가?
가장 슬픈 건 중년 남성 본인들도 이 프레임을 내면화했다는 것이다. "내가 이 나이에 게임을 해서 뭐하나…" 하며 자책한다. 자책은 사회가 만든 족쇄의 뒷면이다. 감히 묻는다. 게임하는 중년보다, 게임하는 중년을 조롱하는 이 사회가 더 성숙한가?

3. 게임과 술, 담배, 도박, 그리고 폭력: 누가 진짜 문제인가
게임은 최소한 누군가의 간을 썩게 하지 않는다. 게임은 가상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인터랙션이다. 상대방과 싸워도, 죽여도, 털어도 리셋 가능하다. 반면 술은 간을 파괴하고, 담배는 폐를 태우며, 도박은 계좌를 거덜내고, 폭력은 가족을 깨뜨린다.
게임으로 인해 발생한 가정폭력이나 파산, 실직은 통계적으로도 극히 드물다. 반면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가정불화, 도박 빚으로 인한 자살 사례는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럼에도 조잡스러운 미디어는 "중년 남성 게임 중독 급증!"이라는 자극적 헤드라인을 뽑는다. 게임은 일단 때리기 쉬운 '쉬운 타겟'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게임을 권장하자. 술 마시고 길에 누워 있는 중년보다, 집에서 조용히 컴퓨터 앞에 앉아 보스를 잡고 있는 중년이 훨씬 낫다. 거기에는 피해자도 없고, 사회적 비용도 들지 않는다. 단지 조용한 승부욕과 약간의 현질만 있을 뿐이다.
4. 죄책감은 개나 줘라 : 게임을 멈추지 말아야 할 이유
이제 그만 회개하자. 당신들은 이미 충분히 책임졌다. 자식들 학원비 대느라 야근을 밥 먹듯이 했고, 상사의 쓸데없는 농담에 박수 쳤으며, 시어머니의 폭언에도 웃으며 명절 상을 차렸다. 그런 삶을 살고도, '게임 좀 한다'고 비난받는 것은 전혀 정당하지 않다.
게임은 성별에 상관없이 이나라의 중년들에게 마지막 방어선이다. 자기만의 공간, 자기만의 리듬, 자기만의 성취. 그걸 ‘중독’이라 부르지 말자. 그건 오히려 ‘생존’이다. 이 세상이 자아를 허락하지 않는 중년에게, 게임은 자신이 누구인지 되묻는 유일한 기회다.
5. 시대는 변했고, 인생이 게임이었다
우리는 스타크래프트로 밤을 지새우던 세대다. 리니지의 첫 사냥터에서 친구를 만들었고, 디아블로2에서 악마보다 더한 상사도 버텨냈다. 그러다 결혼하고, 취직하고, 자식을 낳느라 잠시 잊었을 뿐이다. 게임은 우리 삶의 일부였고, 이제 그걸 되찾았을 뿐이다.
"아저씨가 게임을 왜 해요?"라는 물음에 이제는 이렇게 답하자. "내가 게임을 해서 지금까지 버틴 거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견뎠고, 이젠 누군가의 허락 없이도 좋아하는 걸 할 권리가 있다. 게임은 중년 남성에게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잃어버린 정체성과 권위를 되찾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이 말로 쓸데없는 잡담을 마친다.
"한국의 (일부) 중년들에겐 인생이 게임이었고 게임이 인생이었다. 그리고 그 게임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