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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꼰대가 늙은 꼰대를 닮지 않기를” – MZ 세대와 사토리 세대의 평행이론

시바한잔해 2025. 4. 19. 17:27

MZ 세대와 사토리 세대의 평행이론

누군가는 말한다. “요즘 애들은 참 쿨하다.” 틀렸다. 이건 쿨한 게 아니라, 체념이다. 패기와 열정 따윈 이미 저 멀리 던져버린 세대들, 그 이름하여 한국의 ‘MZ 세대’와 일본의 ‘사토리 세대’다. 이 둘을 보면 마치 거울을 마주한 듯하다. 좌표는 달라도 본질은 같다. 미래를 담보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방어기제. 단지 그것이 문화와 기질에 따라 다르게 발현되었을 뿐이다.

 

용어의 출처와 기원 –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MZ 세대’는 한국 특유의 마케팅적 조어다. 밀레니얼 세대(M)와 Z세대(Z)를 묶어 ‘하나의 트렌드 소비군’으로 포장한 말이다. 1980년대 초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출생한 세대를 싸잡아 ‘MZ’라 부르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이 호칭에 공감하지 않는다. 그저 광고회사와 기업들이 이들을 새로운 ‘돈벌이 타깃’으로 규정하기 위해 만든, 냉소적인 상품명에 가깝다.

 

반면, 일본의 ‘사토리 세대(さとり世代)’는 그 뿌리가 다르다. ‘득도(悟り, 사토리)’라는 말에서 유래했는데, 이건 뭔가를 ‘이해하고 내려놓은 자’라는 의미다. 즉, 욕망도 없고, 경쟁도 피하며, 승부에도 관심이 없다. 그냥 무소유로 사는 것처럼 보이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생 일본 청년들에 대한 자조적인 레이블이다. 사회적 쇠락과 잃어버린 30년의 피로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었기에, 어쩌면 이 용어는 일종의 ‘자기 변명’이자 ‘면죄부’일지도 모른다.

희망없는 사회에서 극명하게 차이나는 두세대

유사점 : ‘잃어버린 미래’의 자식들

 

MZ든 사토리든, 이들의 공통점은 뚜렷하다. 일단 사회에 대한 신뢰가 없다. 부모 세대는 ‘하면 된다’고 외쳤지만, 이들은 ‘해봤자 안 된다’는 현실을 너무 일찍 배웠다. 한국은 집값이, 일본은 정규직 진입이 막혔다. 연애? 결혼? 출산? 다 사치다. 가성비와 가심비의 줄타기 속에서 이들은 소비를 유일한 자아 표현의 수단으로 삼는다. ‘욜로’와 ‘소확행’, ‘탕진잼’ 같은 유행어는 그저 현실 회피적 생존전략일 뿐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기성세대에 대한 혐오와 회피다. 일본의 사토리 세대는 ‘회사에 충성하는 사축(社畜)’이 되기를 거부한다. 한국의 MZ는 ‘회사가 나를 알아서 케어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임감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너무 많은 책임을 너무 일찍 떠안았기에, 지금은 그 짐을 덜어내기 위해 극단적으로 개인주의로 기운 것이다.

 

차이점 : 표현 방식의 문화적 차이

 

표현 방식에서 둘은 완전히 다르다. 일본의 사토리 세대는 조용히 물러난다. 말없이 퇴장하고, 눈에 띄지 않는다. ‘실망’이라는 단어조차 소리 내지 않고 삼킨다. 반면 한국의 MZ는 목소리를 낸다. ‘이게 맞냐’고 묻고, SNS에서 공론화하며, 때론 조리돌림도 서슴지 않는다. 정치 참여율은 낮지만, 분노의 표현력은 최고다. 둘 다 냉소적이지만, 일본은 침묵의 냉소, 한국은 외침의 냉소다. 이건 국가의 정치문화와 교육 방식, 언론 구조의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다.

 

희망없는 사회의 민낯이 드러났다

 

이 두 세대를 통해 드러난 가장 끔찍한 진실은 간단하다. 이 사회는 더 이상 ‘청춘’을 투자할 만한 가치 있는 무대가 아니다. 청년이 희망을 걸 수 없는 사회는 이미 반쯤 죽은 사회다. 일본은 이미 그 길을 갔고, 한국은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다.

사토리 세대는 일본의 장기불황과 고용 경직성, 과도한 경쟁 시스템 속에서 탄생한 ‘사회적 포기자’들이다. 반면 MZ 세대는 한국식 학벌지상주의, 부동산 폭등, 초고속 정보사회에서 ‘과잉 자극에 지친 존재’다. 둘 다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낸 괴물이며, 자발적이라기보다는 구조적 산물이다.


어쩌면 그들은 ‘담장 없는 노년’이 될 수도

이들이 중년, 그리고 노년이 되었을 때? 상상은 암울하다. 돌봄의 공동체가 없다. 결혼도 안 했고, 가족도 없다. 연금도 시원찮다. 부동산도 없다. 즉, 노후를 함께 견뎌줄 사회적 울타리가 없다. 지금 장년층은 그래도 ‘가족’이라는 피난처라도 있었지만, 이들은 철저히 개인이다.

일본은 이미 고독사와 무연고 사망이 일상이다. 한국도 곧 그 뒤를 따를 것이다. 다만 한국은 일본보다 속도가 빠르다. 더 급하게 늙고, 더 빨리 고립된다. 혼자 늙고, 혼자 죽는 사회. 그게 바로 이 ‘신세대들’이 늙은 후의 모습이다.

 

기성세대의 사과와 사회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

 

이들을 ‘이기적’이라 욕하지 마라. 이들은 어차피 기성세대가 버린 미래 속에서, 자신만의 생존법을 만든 것뿐이다. 진짜 해결책은 단순히 이들에게 더 많은 책임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를 이들에게 맞게 바꾸는 것이다.

  • 일 중심 사회에서 삶 중심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 직장=인생이라는 프레임을 깨야 한다. 
  • 주거 안정성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내 집 마련’이 인생 목표가 아닌 사회가 되어야 그나마 희망적이다.
  •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창업과 전직, 휴식이 유연해져야 할 시대가 되긴 했다.
  • 삶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결혼 안 해도, 아이 안 낳아도 불이익으로 돌아와선 안 된다.

마지막으로, 이 세대가 가진 진짜 강점은 ‘자기중심성’이 아니라 ‘현실 감각’이라는 것을 인정하자. 거짓 희망에 속지 않고,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감각. 이건 기성세대가 본받아야 할 부분이다.  MZ 세대와 사토리 세대는 비극의 주인공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가 만들어낸 현실의 반영이다. 이들을 바꾸려 하지 말고, 이들이 살아갈 사회를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이들은 말할 것이다. “우린 그저 당신들이 실패하고 내팽겨친 미래일 뿐”이라고. 그리고 그 말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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