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실실

인생을 예술처럼 소비하는 ‘건전한’ 알콜중독자—술과 흥과 철학의 삼합을 추종하는 부류에 대한 잡담

시바한잔해 2025. 5. 25. 18:00

 

대한민국에서 ‘알콜중독자’란 단어는 자동완성처럼 ‘폐인’이라는 단어를 달고 나온다. 혀가 꼬이고, 눈은 풀리며, 소주병을 무기 삼아 스스로를 파괴하는 이미지. 하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이 사회의 표준이 지나치게 교조적이며, 동시에 음흉하다는 사실이다.

 

회식자리에서 원샷을 강요하고 2차, 3차를 기억도 못하는 사람 , 허구헌날 만취해서 폭주하다가 결국엔 이혼서류를 마주하는 사람—이들은 분명 술에 찌들어 있다. 그러나 이들이 ‘알콜중독자’라는 이유만으로 동일 선상에 놓여야 할까?

아니다. '시바한잔해는 오늘, ‘건전한 알콜중독자’라는 새로운 종의 존재를 선언하고자 한다. 폐인이 아니라 흥을 알고, 멋을 즐기며, 삶의 무게를 양조한 자들. 그들은 이태백처럼 살아간다. 낮에는 성실하게 일하고, 밤에는 예술처럼 술을 마신다. 이들과 함께하는 술자리는 결코 ‘취기’가 아닌 ‘문화’다.

 

이제부터 이 고결한 알콜중독자의 3가지 특성을 치열한 고민을 바탕으로, 내키는대로 분석하여, 우리 모두가 왜 이들을 따라야 하는지에 대해 강렬하게 수긍해보자.


1. 주량을 제어하는 자만이 ‘술을 지배한다’—건전한 알콜중독자의 첫 번째 덕목

건전한 알콜중독자는 절대로 만취되지 않는다. 그는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을 소비한다. 일종의 예술 창작 행위다. 마신다는 건 무의식의 하강이지만, 소비는 의식의 승화다. 그의 술은 항상 ‘적절하다’. 적절하게 취하고, 적절하게 멈춘다. 집술을 하게 되면, 이 고수들은 절대로 여러병을 사재지 않는다. 집에 쌓아두고 먹는 건 식탐에 가까운 욕망이고, 이성 없는 소비다.

 

오히려 그들은 오늘 하루의 감정과 피로, 대화의 농도에 맞춰 술을 산다. 편의점에서 병 하나, 캔 하나. 가볍게 집어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 뒷모습은 낭만과 철학이 짙게 묻어 있다. 이쯤 되면, 술이 문제가 아니라 ‘박스 단위’의 비정제된 욕망이 문제다. 맥주 한 캔에 철학을 담고, 위스키 한 잔에 하루의 결론을 내릴 줄 아는 삶. 이게 진정 ‘건전한’ 중독의 미학이다. 그렇다, 미학. 중독에도 품격이 필요하다.

 


2. 음주운전의 가능성 자체를 사전에 제거하는 습관—건전한 알콜중독자의 두 번째 미덕

이들은 언제나 술자리를 계획한다. 그리고 집술이 아닌, 회식이나, 친구 모임엔, ‘차를 두고 간다.’ 대리 부르면 된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운전 자체가 술과 양립할 수 없는 행위이며, 그 상상조차 모욕이다. 그는 음주운전이 단지 불법이라서가 아니라, 인생의 품격을 조지는 행위이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

 

이쯤 되면, 그들는 술자리의 전략가이자 철학자다. 애초에 위험을 봉쇄하고 들어가는 이 치밀함은 ‘건전함’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하다. 이는 일종의 도덕적 신념이다. ‘나는 오늘 마시고 흥에 겨울 것이니,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격은 지키겠다.’ 이런 의지 말이다.

 

술 먹고 차키를 들고 나서는 이들이여, 정신 좀 차려라. 술은 감정을 해방시키되, 이성을 해방시켜서는 안 된다. 진정한 고수는 술자리를 지배할 줄 아는 자이며, 자기 인생의 핸들을 남에게 맡기지 않는다. 대리는 대책이 아니다. 애초에 차를 안 가져가는 것이 진정한 계획이다. 이런 사전적 자제야말로 우리 모두가 추종해야 할 알콜중독자의 품격이다.


3. 술을 마시면 더 조심하는 자—건전한 알콜중독자의 세 번째 철학

‘술 먹으면 원래 그런 거지’라는 말처럼 구차한 핑계가 또 있을까? 이 말은 곧 ‘나는 인간쓰레기인데, 술 핑계로 잠시 포장할게요’와 다를 바 없다. 건전한 알콜중독자는 그 반대다. 그는 술을 마시면 입을 다문다. 그리고 조용히 잔을 기울인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조심하고, 더 절제하며, 더 관찰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는 알고 있다. 사소한 말 한 마디, 가벼운 언쟁이 인생의 균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러한 자기억제는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하나의 '도(道)'에 가깝다. 무협지로 치면 내공 30년. 조용히 마시는 그의 술자리는 ‘무탈함’ 자체가 미덕이다. 흥분한 목소리, 들썩이는 주먹, 취해서 까무러치는 민폐, 모두가 그들의 세계관에서는 금기다. 그들은 인간이 얼마나 쉽게 망가질 수 있는지를 알고 있고, 그래서 더 단단해진다.

 

이런 고수와 술을 마시는 건 기분이 좋다. 감정의 해방이 아니라, 정제된 위로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술에 의해 지배당하지 않는 자가 진정한 건전한 알콜중독자다.


맺으며: 알콜중독이라는 말에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알콜중독자’라는 단어에 새로운 정의를 부여해야 한다. 단순히 자주 마신다고 해서 중독자가 아니다. 그것은 빈도의 문제가 아니라, 품격의 문제다. 스스로를 잃지 않고, 타인을 해치지 않으며, 술과 함께 더 깊이 있는 인간이 되어가는 사람—그는 오히려 비알콜중독자보다 더 건강하다.

 

이 사회가 요구하는 절제는 실은 통제다. 그리고 통제는 위선이다. 진정한 절제는 ‘욕망의 방향’을 아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건전한 알콜중독자의 내공이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이 새로운 종족에게 박수를 보내야 한다. 그들은 패배자가 아니라, 흥과 멋과 통제의 대가다. 그리고 우리도 그들의 철학을 조금씩 배워야 한다. 주량을 넘어서지  말고, 오늘 하루의 감정에 맞게 잔을 들라. 운전을 애초에 포기하고, 차키는 두고 나오라. 술을 마실수록 더 조용하고, 더 침착하라.

 

이 모든 것을 실천할 수 있다면, 당신도 건전한 알콜중독자의 세계로 입장할 자격이 있다. 그리고 그곳은 생각보다 꽤 괜찮은 신선계 같은 리그다. 술에 취하기보다는 삶에 취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그런 멋진 곳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