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로 하다가 골로 간다”는 조롱을 이겨내라 : 욜로는 여전히 유효한 ‘진짜 삶’의 선택이다
1. 욜로는 왜 한국에서 급성장했는가: 불안이 낳은 거품
'You Only Live Once'라는 꽤 쌈빡(?)한 것이 한국에 상륙했을 때, 그것은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탈진한 세대의 절규였고, 희망이 닫힌 사회에서 나온 체념의 반동이었다. 경제성장은 멈췄고, 취업은 바늘구멍이 되었으며, 집 한 채는 평생 빚을 지고도 가질 수 없는 신기루로 바뀌었다. 부모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 이른바 'N포세대'는 미래를 위한 투자가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들은 과거처럼 ‘지금 참고 미래에 보상받는다’는 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욜로는 거대한 해방구처럼 등장했다. 소비는 죄가 아니고, 퇴사는 용기이며, 여행은 삶의 필수로 둔갑했다. 신용카드 한도를 긁어가며 파리에서 와인을 마시는 것이야말로 '진짜 삶'이라는 착각 속에서, 수많은 청년들은 "지금 이 순간"에 모든 것을 걸었다. 사회는 이 욜로 열풍을 문화 트렌드라며 떠받들었지만, 실상은 체념의 시대가 자아낸 자기 위안의 환각제였다. 욜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사회'가 만들어낸 소비적 도피처였고, 집단적 무기력감에 중독된 사회의 비명이었다.
2. “욜로 하다가 골로 간다”: 반동의 시작
처음에 욜로는 반짝반짝 빛났다. 그러나 곧 그 이면이 드러났다. '욜로 하다가 골로 간다'는 말이 등장하면서, 이 라이프스타일은 무책임하고 즉흥적인 삶의 방식으로 조롱받기 시작했다. 왜 이런 반전이 일어났는가? 그것은 단순히 욜로족의 실패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실패했을 때, 그들을 받아줄 사회적 안전망이 없었다는 사실이 핵심이다.
한국 사회는 이중적이다. 젊은이들에게는 ‘다양한 삶의 방식’을 장려하지만, 정작 그들이 기성의 틀을 벗어나면 ‘무책임하다’며 비난한다. 욜로는 결국 그 이중성에 걸려 넘어졌다. 사회적 지지 없이 홀로 떠난 개척자들이 결국 체계의 벽에 부딪히자, 사람들은 그들을 조롱함으로써 다시 현실에 안주하려는 심리적 안정을 찾은 것이다. "너도 실패했지? 그럼 다시 줄서." 이 말은 한국사회의 집단심리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결국 ‘욜로 하다가 골로 간다’는 조롱은 실패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대안을 허용하지 않는 구조적 억압에 대한 냉소적 반응이었다. 자율성과 책임의 균형이 무너진 사회에서, 욜로는 '용기'가 아닌 '미련'으로 취급된다.
3. 실패한 욜로의 자화상: 자유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
사례 1: 스타트업에서 퇴사 후 세계여행을 떠난 30대 A씨
A씨는 “회사에 충성하느니 나에게 충성하겠다”며 7년간 다닌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유튜브에 여행 브이로그를 올리며 자칭 ‘디지털 노마드’로 변신했지만, 1년 만에 적금은 바닥났고 수입은커녕 영상 편집 알바로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그가 간과한 것은 ‘자기만의 시간’이 '사회적 시스템 위에서만' 지속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사례 2: 신용대출로 명품을 사고 인생을 즐긴 20대 B씨
B씨는 '한 번뿐인 인생, 고급스럽게 살겠다'며 한 달 수입 180만 원 중 절반을 명품 소비에 썼다. SNS에서 부러움을 샀지만, 결국 대출 연체로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그가 놓친 것은 '삶의 질'과 '소비의 질'은 다르다는 근본적인 구분이었다. 그는 ‘지금의 나’만을 위해 살았고, '미래의 나'를 철저히 방치한 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욜로’를 구호로 착각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철학이 아니라 선택이며, 선택에는 필연적으로 책임이 따른다. 책임 없는 자유는 환상일 뿐이며, 이 환상은 언제나 부채와 고립이라는 대가를 남긴다.
4. 욜로의 반전: 스스로 선택한 삶을 스스로 설계한 자들
사례 1: 안정된 직장을 유지하면서 미니멀 욜로를 실천한 40대 직장인 C씨
C씨는 매년 2주씩 장기여행을 떠난다. 대신 명품 대신 중고차를 타고, 외식은 줄이며 자신에게 진짜 의미 있는 소비에 집중한다. 그는 욜로를 ‘순간의 쾌락’이 아니라 ‘우선순위의 재정립’으로 해석한 사람이다. 이 방식은 소비를 줄였지만 삶의 만족도는 높였고, 무엇보다 후회 없는 삶을 위한 장기 전략이었다.
사례 2: 회사를 그만두고 소도시에서 카페를 연 30대 D씨
D씨는 '매일 밤 야근하는 삶이 인생인가'라는 질문 끝에 사표를 던졌다. 도시 외곽에서 임대료가 저렴한 공간을 찾아 작지만 개성 있는 카페를 열었다. 매출은 많지 않지만, 그는 자신이 만드는 커피와 대화 속에서 진짜 삶의 의미를 찾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욜로를 ‘삶의 질적 전환’으로 해석했고, 그 변화는 '철저한 준비와 현실 인식' 위에서 가능했다.
이 둘은 욜로를 단순한 일탈이 아닌 '자기 삶의 설계도'로 삼았다. 그들은 욜로의 표면적인 소비문화가 아닌, 본질적인 자기 선택과 우선순위에 집중했기에 만족을 얻은 것이다.
5. 유행에 치여서 살지 말고, 중심을 잡고 살아라
한국 사회는 늘 미래를 강요해왔다. '지금 참아야 나중에 웃는다'는 명제는 여전히 교과서적인 덕목으로 존재한다. 반면 욜로는 그에 대한 반동으로, '지금 웃자, 내일은 몰라'를 외쳤다. 그러나 문제는 이 둘 다 진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래만을 사는 삶도, 현재만을 사는 삶도 결국 파열음을 낸다.
“현재를 즐기지 못하면 미래를 즐기지 못한다.” 이 말은 절반의 진실이다. 그러나 현재만 즐기다 보면 미래는 쉽게 무너진다. 중요한 건 균형이다. 욜로가 필요 없는 삶, 그것은 유행에 휘둘리지 않는 삶이다. 지금이라는 시간을 인식하되, 그 순간이 무너지지 않도록 구조를 갖춘 삶. 자유를 향한 무책임한 도전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설계한 성찰적 선택이 필요한 시대다.
지금 우리가 필요한 것은 일률적인 욜로가 아니라, '자기 주도적인 욜로’다. 유행은 지나가고, 환상은 꺼지며, 결국 남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책임이다. 중심을 잡지 못한 욜로는 일탈이고, 중심을 지킨 욜로는 철학이다. 그리고 그 철학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선택은 언제나 각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