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娶妻莫恨無良媒 書中有女顔如玉』 — 책 속엔 얼굴 고운 여자도 있다는데, 현실은 왜 인간을 등급으로 나눌까?
“娶妻莫恨無良媒 書中有女顔如玉”
아내를 맞음에 좋은 중매 없음 한탄하지 마라. 책속에 얼굴이 옥처럼 아름다운 여인 있다네.
표면적으로는 혼인을 주선하는 인연이 없어도 책을 통해 아름다운 여성(혹은 이상형)을 만날 수 있다는 말로 해석된다. (중국 북송의 3대 황제) 송진종이 강조했던 독서의 가치 가운데 하나로, 현시대에서도 종종 인용되는 이 문장은 학문과 수양을 통해 결국은 삶의 중요한 결실도 얻을 수 있다는 고무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과연 ‘書中有女顔如玉’이라는 문장이 시사하는 바는 단순한 이상향의 서사인가, 아니면 인간 욕망의 한 측면을 정교하게 포장한 자기기만인가?
현대 사회로 시점을 옮겨보자. 고전 문학 속 지식인의 낭만적인 자기계발은 이제 ‘스펙’이라는 냉혹한 용어로 대체되었고, ‘책 속의 여인’은 이젠 더 이상 종이 위에서 미소 짓지 않는다. 그 여인은 오늘도 결혼정보회사 웹사이트의 검색창에, 키 180 이상, 연봉 8000만 원 이상, 4년제 정규대학 졸업 이상의 남자라는 조건 안에서 나오게 되어 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남성 회원 역시 키, 체형, 학력, 직업, 부모 직업에 따라 수치화되어 리스트업된다. '무릉도원'을 꿈꾸며 책장을 넘기던 선비는 이제, 마치 부동산처럼 스펙을 비교하며 ‘가성비 좋은 이성’을 찾는 소비자가 되었다.

결혼정보회사: 연애의 종말이자, 인간 품평의 시작
‘무릇 결혼은 하늘이 정한 인연’이라는 말은 이제 조롱거리다. 결혼은 철저한 조건 게임이 되었고, 조건은 곧 상품성을 의미한다. 결혼정보회사는 이 ‘상품성’을 매뉴얼화한 유통 플랫폼이다.
고등학교 시절 전교 1등을 하던 이가 지금은 키 160cm 미만이라는 이유로 '플래티넘 회원'의 리스트에서 자동 제외된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했지만 집안 형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가산점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대로, 부모가 병원을 운영하거나 강남에 부동산을 다수 보유한 경우, 본인의 직업이 변변치 않아도 '핵심 회원'이 된다.
이쯤 되면 의문이 생긴다. 이 사회는 도대체 언제부터 인간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가격표’를 붙이기 시작했는가? 왜 이 정도의 '품평'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가? 그 답은 간단하다. 결혼이 이제 더 이상 감정적 연결의 서사가 아니라, 경제적 연합체의 구축이 되었기 때문이다.
공부는 곧 결혼 전략이다: 30대 남녀의 사례 분석
대한민국에서 30대는 결혼의 데드라인이라 불린다. 남성은 보통 군 복무와 사회 초년생 시기를 거쳐 30대 초중반에 이르러 결혼 시장에 본격 진입하고, 여성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사이에 ‘가장 상품성 있는 시기’를 지나게 된다. 이 시기의 남녀는 단순히 배우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금껏 공부해 온 결과물의 시장 가치를 시험받는 것과 다름없다.
사례 1: 35세 남성 A씨
- 서울 중위권 4년제 대학 졸업
- 대기업 과장, 연봉 6천만 원
- 키 175cm, 외모는 평범
- 부모 자영업, 수도권 소재 20평 아파트 보유
A씨는 결혼정보회사 기준에서 상위 20~30% 수준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A씨가 원하는 여성 조건(예: 외모 준수, 30세 이하, 간호사 또는 교사, 부모 빚 없음)에 부합하는 여성과의 매칭은 매우 제한적이다. 왜냐하면 A씨보다 연봉이 높은 남성, 더 학벌이 좋은 남성, 부모가 강남에 부동산을 가진 남성도 이와 같은 여성을 원하기 때문이다. 즉, A씨는 자기가 오랜 시간 공부하고 일군 스펙에도 불구하고 ‘조건 경쟁’에서 밀리는 것이다.
사례 2: 34세 여성 B씨
- SKY 대학 졸업
- 공기업 근무, 연봉 5천만 원
- 외모는 평균 이상, 키 163cm
- 부모 지방 거주, 자산 없음
B씨는 학벌과 직장이라는 조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지만, ‘결혼 시장’에서는 34세라는 나이와 부모 자산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감점을 받는다. 특히 연상 남성을 원하지 않고 동갑 또는 연하를 원하는 경우, 선택지는 급격히 줄어든다. 그녀가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취업까지 걸어온 모든 경로는 어찌 보면 ‘품평’에서 한 번 더 걸러지는 필터일 뿐이다.
이 사례들이 말해주는 바는 명확하다. 공부는 결혼이라는 게임판에서 선택지를 넓히는 하나의 카드일 뿐이다. 절대적이지 않다. 더욱 냉정하게 말하자면, 자기계발의 의지는 자본과 젊음이라는 리소스 앞에서 그다지 유의미하지 않다.
‘좋은 중매’란 무엇인가: 마케팅인가, 인문학적 환상인가
‘娶妻莫恨無良媒’라는 말은, 어쩌면 인간은 좋은 중매가 없어서 결혼을 못 한다는 근거 없는 자기 위안에서 출발한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결혼정보회사는 그런 ‘無良媒’의 부재를 상업적으로 해석한 끝판왕이다. 조건을 수치화하고, 매칭을 최적화한다는 그럴싸한 알고리즘 뒤에는 사실상 '당신의 가치가 이 정도밖에 안 됩니다'라는 평가 시스템이 숨어 있다. 인간은 데이터가 되었고, 연애는 경매가 되었다.
사랑의 조건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 조건들이 ‘숫자’로 계량화된 것은 전례가 없다. 얼굴 점수, 학벌 점수, 연봉 점수, 가문 점수. 이쯤 되면 결혼정보회사의 시스템은 선사시대 부족 간의 교환결혼보다도 덜 인간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어도 부족 사회에는 ‘사람됨’이라는 미덕이 거래 기준이 되었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의 결혼정보회사에는 그런 항목은 없다.
결론: 사랑은 어디에 갔는가
‘書中有女顔如玉’은 과거의 환상이었다. 그 환상은 사람들에게 인내와 수양의 이유가 되었고, 학문의 도구가 되었다. 그러나 21세기의 결혼은 환상도, 인내도, 수양도 필요 없다. 대신 키보드와 마우스가 필요하다. 필터를 설정하고, ‘프로필’을 비교하며, 자신의 시장 가치를 직면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알고도 결혼을 원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거래다. 굳이 나쁘다고 말하진 않겠다. 다만 그 거래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되는 것만은 거북하다. 차라리 우리는 솔직해져야 한다. 지금의 결혼은 ‘합리적 소비’이고, 결혼정보회사는 ‘상품 비교 사이트’다. 다만 문제는, 그 상품이 인간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인간은, 어떤 명분으로든 '상품'이 되어선 안 된다. 설령 그 명분이 '행복'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