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보니까 말이야…” 일타강사의 ‘삶의 교훈’? 그 입 다물라
입시광풍 위에 군림한 ‘착각’ – 일타강사라는 기묘한 계급
대한민국 입시판에 독특한 생명체가 군림하고 있다. 고작 수능 문제를 빠르고 정확하게 풀어주는 능력으로 ‘교육계의 연예인’ 자리를 꿰찬 이들, 소위 ‘일타강사’라 불리는 자들이다. 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를 “삶의 길잡이”, “젊은 세대의 멘토”, 나아가 “교육의 상징” 같은 지점까지 끌어올렸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서 그런 착각이 비롯된 걸까? 진짜 문제는 그들의 착각에 대중이 점점 무감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살아보니까 말이야…”라는 민망한 주접
이제는 수업 말미에 ‘삶의 교훈’ 한 조각 정도는 꼭 끼워 넣어야 일타강사 코스프레가 완성되는 모양이다. 카메라 앞에서 정제된 목소리로, 아니면 유튜브 쇼츠로 편집된 영상에서 이들은 인생을 논한다. “멘탈 관리가 중요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세상이 너를 시험할 때가 진짜 너를 만드는 순간이야” 등등...
누군가는 그럴싸하다고 수긍하겠지만, '시바한잔해'가 듣기엔 그냥 잡소리였다. 문제는 그걸 말하고 있는 이들이 '인생을 논할 경륜이 되느냐'는 것이다. 불과 사교육 노동자들에 불과한 그들인데...
자기 삶을 되돌아보기도 바쁠 나이에, 남의 인생을 해석하고 이정표를 세워주려는 오만. 그들 나름대로 치열하게 준비해서 유명강사가 되었겠지만 그래봤자 시험 잘 보는 법 알려준 게 전부인 인생에 무슨 대단한 보편성이 있다고 나대는 것인가? 사교육 인플루언서가 인생의 스승과 정체성을 헷갈리는 것, 그게 지금 대한민국 일타강사들의 자화상이다.

사교육판의 귀족들이 등장했다
입시 과열, 공교육 붕괴, 사교육 예산 폭등이라는 비극의 무대 위에서 일타강사는 대중의 불안을 자산으로 바꿔냈다. 연수입 수십억, 어떤 이는 연 100억을 넘긴다. 플랫폼 계약, 교재 판매, 강의료, 광고 수익 등으로 그들의 통장은 매년 ‘풍년’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 모든 부를 '자신의 노력'으로 정당화한다. 새벽부터 밤까지 강의 준비하고, 매 시즌 교재를 개정하고, 강의력을 끌어올렸다고 말한다. 물론 그 노력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 노력이 만든 부는 이미 상상을 초월할 만큼 보상되었다. 문제는 그 이후다. 그들이 그 부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극히 소수의 강사들이 장학금이나 기부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언론을 탈 정도로 ‘특이한 뉴스’가 된다는 사실이 문제의 본질을 드러낸다. 왜 극소수의 기부만 회자될까? 대다수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익의 몇 퍼센트라도 사회로 환원하는 이들이 있다면 박수칠 수 있다. 그러나 입시라는 기형적 산업구조 위에서 부를 창출한 다수의 강사들은 ‘수혜자’이면서도 그 구조에 책임지지 않는 방관자다. 그들이 말하는 재능기부조차도 '마케팅'이었다.
세상의 존경을 받는 줄 착각하는 중
입시생들 사이에서 ‘일타’는 신격화된다. 강의만 듣고 있어도 성적이 오를 것 같은 착각, 그들에게 비치는 문제풀이에 대한 자신감과 성적향상에 대한 확신은 공부에 지친 청소년들에게 일종의 환각제가 된다. 그러나 그 열광은 시험과 함께 종료된다. 팬심은 대학 합격 통지서와 함께 증발하고, 존경은 현실에서 소별된다.
하지만 강사라는 작자들은 그걸 모른다. 입시생이라는 극히 좁은 팬덤을 전 국민의 지지로 착각한다. 자기 말 한마디에 사회가 움직일 줄 알고, 정치, 경제, 교육에 대한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다. 당신은 교수도 아니고, 언론인도 아니고, 정치 평론가도 아니다. 그저 시험 잘 풀게 해주는 기능인일 뿐이다. 그 이상의 목소리를 내고 싶다면, 적어도 입시시장 밖에서 경험과 권위부터 갖춰야 한다.
해외에는 없는, ‘한국형 기형직업’
'일타강사'라는 변종은 한국에만 존재하는 기형적 현상이다. 미국이나 유럽에도 입시 대비 전문 강사는 있지만, 그들이 공공연히 연봉 100억을 넘긴다거나, TV에 나와 ‘삶’을 논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전문가’로서 묵묵히 일하고 조용히 퇴장한다. 그리고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도 그들에게 그렇게까지 절실하지도 않다.
입시 광풍에 쩔어 있는 우리나라는 다르다. 대학이 곧 계급이 되는 사회. 입시가 곧 가족의 미래가 걸린 전쟁이 되다 보니, 일타강사들은 그 전쟁터 위의 장사꾼이자, 왕이 되었다. 학생과 학부모는 불안을 돈으로 해결하려 들고, 그 돈은 ‘학원 스타’들의 통장으로 빨려 들어간다. 마치 신흥 종교처럼, 그들은 신봉자를 양산하고 자아도취에 빠진다. 이 얼마나 기괴한 광경인가.
“너희는 너희의 자리로 돌아가라”
일타강사들이 스스로를 위대한 위치에 올리려 애쓸수록, 오히려 그들의 진짜 민낯은 더 선명해진다. 그들의 진짜 역할은 단 하나다. 시험 잘 보게 도와주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자신의 삶을 포장해서 수험생에게 강요하지 마라. 당신의 철학을 전파하려고 SNS에서 선지자 코스프레 하지 마라. 인생 강의는 필요 없다. 그건 스승의 몫이다. 교육철학은 없어도 좋다. 단, 수능 문제만 잘 설명해라. 당신의 직업은 스승이 아니라, 수능 코치다.
노력했으면 그 대가는 돈으로 받았으면 충분하지 않은가? 그 돈으로 차를 사고, 아파트를 사고, 명품을 사는 건 당신의 자유다. 그런데 왜 거기다 인생 교훈까지 덧칠하려 드는가? 자기만족은 통장에서 끝내라. 입을 통해 퍼트리지 마라.
우리가 진짜 바라는 건 당신들의 퇴장이다
진심으로 바라는 바가 있다. 언젠가 입시경쟁이 사라지고, 대입전형이 혁신되고, 사교육 괴물들이 설 자리가 줄어드는 미래. 부모의 피 같은 돈을 짜내는 학원 시스템이 무너지고, 학생들이 더는 외로운 입시 전쟁터에 홀로 서지 않아도 되는 날. 그날이 오면, 일타강사라는 직업군은 역사 속의 해프닝으로 남을 것이다.
그때까지는 제발, 당신들만이라도 ‘겸손’이라는 낯선 감정에 익숙해지길 바란다. 인생 강의는 유료 결제 강좌 바깥에서는 자제해달라.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세상은 당신에게 별 관심 없다. 지금은 단지, 시험 점수를 위한 필요악일 뿐이다.
그 이상이 되고 싶다면, 그에 걸맞은 자기 검열부터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