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각(總角), 뿔난 남자들에 대한 잡담 – 모난 인생의 가장자리에서
‘총각(總角)’. 이 단어를 사전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남자”라고 단순 정의하지만, 한자의 조합을 가만히 뜯어보면 묘한 함의가 숨어 있다. ‘총(總)’은 ‘거느릴 총’, ‘각(角)’은 ‘뿔 각’. 그렇다면 총각이란 ‘뿔을 거느린 남자’, 곧 수많은 각(角)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를 자의적으로 풀이하자면, 총각은 모나 있다. 쉽게 말해, 온통 각져 있다. 아직 누구와도 부딪혀 둥글게 다듬어지지 않은, ‘각진 인간’이다.
이 각은 단순한 성격의 일그러짐이 아니다. 사회와 충돌하고, 여성과 마찰을 일으키며, 가족이라는 제도와도 화학작용을 시작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야성적 독립체다. 흔히 결혼을 인생의 한 굴곡으로 말하지만, 총각은 그 굴곡조차 시작하지 않은, 아직 세상과 진지하게 마주하지 않은 상태의 인간이다. 그래서 오히려 가장 많은 각을 지닌다.
1. 남자는 왜 결혼하면 둥글어지는가 – “아내 앞에서는 뿔도 못 세운다”
실제로 많은 남성이 결혼하면 놀라울 정도로 유순해진다. **“그렇게 각지던 놈이 왜 저리 고분고분해졌지?”**라는 말을, 친구의 결혼식장 이후 들을 일은 흔하다. 이는 단지 ‘애 낳고 살아보면 다 똑같다’는 체념적 진리가 아니라, 부부 관계의 본질적 구조에 기인한다.
결혼은 타협의 제도다. 이 타협은 경제적, 정서적, 물리적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요구된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의 부부관계는 전통적으로 여성이 실질적 가정 운영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남성은 결혼을 통해 구조적 권력을 여성에게 일정 부분 양도한다. ‘남편’이라는 호칭은 한편으로는 권위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아내라는 조율자 앞에 뿔을 거두는 입장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또한 남성은 결혼을 통해 ‘자유’라는 가장 강한 각을 희생한다. 일상의 결정은 1/n의 협의로 귀결되며, 감정의 표현도 검열된다. 성격은 자연스럽게 다듬어진다. **“둥글지 않으면 버티지 못한다”**는 결혼의 생존 조건은 남성을 유순하게 만든다. 아내 앞에서 강한 남자는 드물고, 오래 버티는 남자는 다 조용하다.
2. 총각인데 둥근 성격? 유전자 돌연변이거나 사회적 위장술사
종종 결혼도 안 했는데, 모나지 않은, 인간적으로 유연한 총각이 있다. 이들은 마치 결혼을 통해 다듬어진 것 같은 둥근 면모를 갖추고 있다. 그럼 이들은 어떤 존재인가? 정답은 둘 중 하나다. 진짜 돌연변이거나, 혹은 사회적 위장술사다.
우선 돌연변이일 경우. 이들은 원래 타고난 성격이 유순하다. 혹은 부모의 교육이나 삶의 조건 속에서 조기 ‘사회화’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총각의 생태적 본질에서 벗어난 ‘예외 개체’일 뿐이다. 문제는 이들이 너무 적고, 너무 예외적이라서 일반화가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생물학적으로 모든 종에는 예외가 존재한다. 하지만 예외는 어디까지나 예외일 뿐, 그것이 평균이 될 수는 없다.
반면 위장술사의 경우. 이들은 겉으로는 둥글지만 속에는 각이 살아있다. ‘연애력’이 뛰어난 총각, 사회적 연기를 잘하는 총각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필요에 따라 성격을 접는 법을 안다. 그러나 그 성격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숨겨져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결혼 후,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총각의 민낯은 종종 인간관계의 파국을 부른다.
3. 미혼 여성, 즉 처녀는 총각과 다를까?
같은 미혼이라도 여자는 다를까? 결론부터 말하면, ‘성격의 각짐’이라는 측면에서는 다르지만, ‘사회적 압력’이라는 차원에서는 비슷하다. 여성은 사회적으로 감정 조절과 관계 중심의 사회화가 남성보다 일찍, 더 강하게 이루어진다. 따라서 외형적으로는 총각보다 훨씬 부드러운 언어와 태도를 가진다. 하지만 이는 환경의 산물이지, 본질적 성격의 반영은 아니다.
여성도 결혼 전에는 자기 삶의 절대성을 유지한다. 자신이 중심인 인생, 자기 부모가 핵심인 가족 구조 속에서 살아간다. 이런 ‘나 중심’ 구조는 남성과 마찬가지로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다듬어지거나 충돌한다.
그러나 사회는 여성에게 양보와 희생의 미덕을 더 일찍 주입한다. 결혼 후의 역할인 ‘아내’와 ‘엄마’라는 프레임 속에서 여성이 성격적으로 둥글어지는 속도는 남성보다 빠르다. 여성은 ‘당연히 원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안고 살아간다. 그 강박이 결국 여성의 많은 것을 부드럽게 만들지만, 그 과정은 결코 부드럽지 않다.
4. 총각보다 돌싱남? 실패한 자가 더 유연하다는 역설
배우자를 고를 때, 많은 이들이 “총각이라 순수하다”는 인식을 갖지만, 이는 순진한 낭만이다. 오히려 이혼을 경험한 남성은 이미 인간 관계에서의 실패와 조정의 고통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 성격이 일정 부분 다듬어져 있다. 총각이 아직 뿔을 거느리고 있다면, 돌싱남은 그 뿔 하나쯤 부러져 본 사람이다.
이혼은 실패가 아니다. 최소한 자신의 모난 부분을 직시한 경험이다. 문제를 덮고 사는 수많은 유부남보다, 실패를 인정하고 재시작한 돌싱남이 오히려 더 현실적이다. 연애를 하든, 결혼을 고려하든, 상대가 ‘무경험 총각’인지 ‘재도전 돌싱’인지를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총각은 '미지의 영역'이고, 돌싱은 '검증된 위험'이다. 어느 쪽이 더 예측 가능할지는 자명하다.
5. "성격차이로 헤어진다" – 둥글지 못한 인간은 누구 책임인가?
결혼한 부부가 가장 흔히 내놓는 이혼 사유는 “성격 차이”다. 말은 거창하지만, 대부분은 ‘내가 원하는 대로 상대가 바뀌지 않는다’는 불만이다. 그렇다면 이건 누구 책임인가?
총각은 모난 곳이 많다. 그리고 여자도, 그 총각을 다듬는 데 실패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여자의 각도 존재한다. 그리고 남자도, 그 각을 마주하며 둥글게 설득하지 못할 수 있다.
결국 결혼이 실패하는 이유는 둘 중 하나가 둥글지 못해서가 아니라, 둘 다 둥글지 못했기 때문이다. 각진 두 돌덩이는 서로를 깎으며 부서진다. 그래서 결혼은 싸움이 아니라 공예다. 조각처럼, 서로의 모난 부분을 다듬어가는 과정이다.
총각이든, 처녀든, 돌싱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얼마나 각을 내리고, 타인을 위해 자신을 깎을 수 있느냐다. 성격 차이는 언제든 일어난다. 그 차이를 줄이려는 의지와 감각이 없는 관계라면, 결혼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 실패는 결코 한 사람만의 책임이 아니다.
결국 ‘총각’이란 뿔을 거느린 인간이다. 그러나 그 뿔은 단지 공격성이나 고집의 상징만은 아니다. 자기만의 세계와 신념을 가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뿔을 언제 내려놓을 줄 아느냐이다. 결혼은 뿔을 숨기거나 없애는 과정이 아니라, 그것을 어디까지 내보이고, 어디서 접을 줄 아는지 배우는 제도다.
그리고 그 과정이 실패하더라도, 다시 뿔을 갈고, 다시 사람을 만나고, 다시 둥글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 누구도 ‘총각’이라는 이름으로 조롱당할 이유는 없다. 뿔은 모난 게 아니라, 아직 덜 다듬어진 날카로움일 뿐이다.